과거 극우 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의 각종 여성·정치인 혐오 표식이 은밀하고 교묘하게 방송 전파를 타 논란이 인 가운데, 특정 성별을 혐오하는 표식을 공적인 표현물에 숨겨 놓는 이들의 심리 기제에 시선이 쏠린다.
|
GS25는 지난 1일 캠핑용 식품 구매자 대상 경품 증정 이벤트를 홍보 포스터를 온라인에 공개했는데, 곧바로 여초 커뮤니티 ‘메갈리아(Megalia)’의 표식이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메갈리아는 남성혐오를 조장한다고 지적받아온 커뮤니티다.
포스터 속 손가락 모양과 문구가 문제됐다. 해당 손가락 모양은 검지와 엄지를 살짝 오므린 것으로 메갈리아에서 ‘한국 남성의 성기가 작다’고 비하할 때 쓰는 표식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온 것.
또 포스터에 적힌 영어 표현 ‘Emotional Camping Must-have Item(감성 캠핑 필수 아이템)’의 각 단어 마지막 글자를 거꾸로 조합하면 메갈(m·e·g·al)이 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의혹은 더욱 짙어졌다. 온라인에서는 ‘GS25를 이용하지 말자’는 불매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논란이 들불처럼 번지자 GS25는 2일 “사안에 대해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앞으로 논란이 될 만한 내용에 대해 철저히 모니터링해 더욱 세심한 검토와 주의를 기울이겠다”며 사과했다. GS25는 현재 포스터 속 손 모양 이미지와 문구 등을 몇 차례 수정했다가 결국 포스터를 아예 내렸다.
|
항의가 빗발치자 경찰청은 2일 “해당 카드뉴스는 민간 홍보업체에 의뢰·제작한 것이다”라며 “특정 단체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 이어 “취지와 다른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어 수정 중”이라며 “유사한 사례가 발생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이러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여성·노인·장애인 등 각종 혐오의 온상지라고 지목받는 일베의 상징을 넣은 사진이나 혐오 용어가 방송을 타는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해 6월 22일 방송된 SBS funE 예능프로그램 ‘왈가닥뷰티’에서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고 노무 핑계’라는 단어를 자막으로 내보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법정제재(주의) 의견을 받았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같은 해 3월 JTBC의 디지털콘텐츠 ‘스튜디오 룰루랄라’의 채널 ‘워크맨’에서 ‘노무’라는 일베 용어를 자막으로 사용해 제작진이 내부 징계 절차를 거치고 공식 사과했다.
|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손 모양 이미지 등을 몰래 넣어 상대를 비방함으로써 일종의 쾌감이나 만족감 등 보상심리를 느꼈을 가능성이 있다”며 “비록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젠더 갈등이 민감한 상황에서는 논란이 됐던 홍보물이 사회적으로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만약 제작자가 의도적으로 그러한 문구나 이미지를 넣었다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넣었을 것”이라며 “보통 사회에서 주류로 인정받지 못할 때 주로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홍보물이나 방송화면에 해당 표식을 일부러 넣었다고 해도 처벌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이나 유명 기업들은 대중에게 발표되는 홍보물 등을 여러 차례 검증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당부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실제로 최초 제작자가 직접 ‘남혐을 표현하기 위해 했다’고 자백하지 않는 이상 처벌하기 어렵다”며 “다양한 형태의 모멸감을 주는 디자인을 광고할 때 기관이나 기업에서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도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매지 말라’는 속담처럼 오해될 행동은 애초에 제공해서는 안 된다”며 “공공기관·기업은 불필요한 젠더 갈등을 미연에 방지할 책임이 있는데, 갈등을 만들고 키웠기 때문에 해명과 사죄·재발방지 대책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