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백주아 기자] “패션계에 화산 폭발과 같은 충격을 주고 싶었어요. 일반인들이 패션을 한 분야의 예술로서 바라보는 문화를 만드는 게 우리 목표입니다.”
| ▲홍익대학교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21학번으로 구성된 B.A.D. 왼쪽부터 이석종(22)씨 , 김지유(21)씨, 편선경(22)씨. (사진=B.A.D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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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10도의 칼바람이 몰아치던 지난달 18일. 강남역 지오다노 매장 앞 인파 사이로 검정색 패턴의 옷을 뒤집어쓴 아홉 명의 모델이 행진했다. 맨살이 드러난 의상을 입고도 추운 기색 없이 전진하는 모습에서 당당하고 꿋꿋한 청춘의 열정이 느껴졌다. 도심 속 런웨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들을 따라가다 이내 스마트폰을 들어 사진을 찍고 쇼를 기록했다. 홍익대학교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21학번 학생 3명으로 구성된 ‘B.A.D’가 마련한 첫 번째 오트 쿠튀르 프로젝트 ‘재를 뒤덮은 사람들’ 무대였다.
지난 7일 홍대에서 B.A.D의 첫 번째 프로젝트 전체 디렉팅과 대표를 맡은 이석종(22) 씨를 만났다. 지난해 10월 결성한 B.A.D는 석종 씨와 같은 과에 재학 중인 편선경(22) 씨, 김지유(21) 씨로 이뤄진 팀이다.
B.A.D는 검정과 재(BLACK AND DUST)의 약자로 화산 폭발로 번지는 검은 연기와 수많은 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이들은 ‘패션계에서 화산 폭발을 일으켜보자‘는 목표로 이번 런웨이를 준비했다. 패션을 디자인이나 마케팅적 관점으로만 보지 않고 한 벌의 의상의 미적 가치, 조형성, 예술성 등에 더 집중한 것이다.
이 씨는 “어느 순간부터 예술의 영역에서 패션이 잊히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한 벌의 의상 또는 한 컬렉션 그 자체만으로 숭고한 미적 가치를 지니고 의상을 제작한 예술가가 평가될 수 있는 만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일반인들이 패션을 한 분야의 예술로 보는 문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 ▲지난 달 18일 강남역에서 진행된 B.A.D <재를 뒤덮은 사람들> 런웨이. (사진=백주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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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는 기성복이 아닌 ’오트 쿠튀르‘를 만들고자 한다. 기성복만으로는 개인의 개성과 욕망을 표출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트 쿠튀르는 프랑스 파리 연맹에서 자체 정의하는 조건이 있지만 매우 높은 가격에 거래되다 보니 부유층과 하이엔드 브랜드들만의 산물이 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들이 길거리 런웨이를 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반인들에게 가장 가깝고 친숙한 장소에서 의상이란 예술을 선보인 것이다. 누구나 쿠튀르를 경험하고 즐길 수 있도록 말이다.
석종 씨는 “처음에 쇼를 보면서 저게 뭘까 하는 물음표에서 시작해 ‘쿠튀르’라는 예술성을 지닌 작품으로 보고 저마다의 느낌표를 얻어가는 것처럼 우연히 지나가다가 야외에 설치된 예술 작품을 보듯이 우리 패션쇼를 관람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 ▲B.A.D의 첫 번재 오트 쿠튀르 프로젝트 <재를 뒤덮은 사람들> (사진=B.A.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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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를 뒤덮은 사람들’에 사용된 9벌의 의상은 모두 검은색을 사용했다. 원단도 대부분 통일했다. 패션을 바라보는 관점과 목표는 같았지만 실물 작업에서는 3명 각자 본인의 색이 강하게 표출될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실루엣 부분에서는 디테일보다는 큰 형태에 집중해 스케치 작업을 이어갔다. 초기 구상부터 최종 작업까지 제작 기간은 총 3~4개월이 소요됐다. 의상 외 모델, 사진, 영상, 사운드, 메이크업, 매니징 등 약 20여명의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도 함께 했다. 지난달 11일, 13일, 18일 각각 홍대·압구정·강남 등 도심 주요 지역 3곳에서 런웨이를 진행했고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그는 “패션과 예술이라는 두 단어로 모인 많은 사람과 흥미로운 작업을 이어 나갔고 그에 걸맞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며 “런웨이는 끝났지만 이후 패션 필름, 수많은 촬영본, 비하인드스토리, 인터뷰, 사운드 등 정제 작업을 추가로 진행해 인스타그램 등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홍익대학교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21학번 B.A.D. 왼쪽부터 이석종, 김지유, 편선경씨. (사진=B.A.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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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의 목표는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프로젝트는 끝났지만 이들은 계속해서 패션에 대한 관점과 미적 가치를 다방면으로 분석해 나가고 있다. 궁극적인 목적인 패션을 예술로 보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일반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작업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쉽게 자신만의 예술 작품을 입을 수 있고 패션도 예술 작품처럼 제목과 캡션이 존재해 각자의 옷을 설명할 때 ‘드레스코드’보다는 폭넓게 ‘작품’으로 설명하도록 하는 식이다. 이에 다음 프로젝트도 길거리 게릴라, 일반인들이 즐길 수 있는 내용을 구상 중이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B.A.D. in 런던, B.A.D. in 파리, B.A.D. in 밀라노, B.A.D. in 뉴욕 등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팀이 되겠다는 포부다.
석종 씨는 “모든 패션은 옷이라고 할 수 있지만 모든 옷이 패션은 아닌 것처럼 사람들이 단순히 필요성에 의한 옷감의 집합으로 패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한 분야의 예술로서 보는 문화가 자리 잡기를 바라고 그 중심에 B.A.D가 있길 바란다”며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이루어 낼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자신감으로 남들의 시선과 평가에 국한하지 않고 더 노력하고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