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조해영 김대연 기자] 국민연금이 재계 반발이 거셌던 대표소송 관련 지침 개정 논의를 매듭짓는 데 실패했다. 충분한 의견 수렴을 위해 심사숙고하겠다는 설명이지만 다음 달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불필요한 논란을 최소화하려는 결정이라는 해석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민연금은 논란이 된 쟁점 일부를 다루는 소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 25일 오후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22년도 제1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회의에 앞서 공공운수노조 국민연금지부 등 노동시민단체 회원들이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피케팅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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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더플라자 호텔에서 회의를 열고 대표소송 절차 등을 개정하는 내용을 담은 ‘수탁자책임활동 지침 개정안’을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국민연금 기금위 관계자는 “지침 개정안 가운데 논란이 된 일부 쟁점들에 대해서는 기금위원으로 구성된 소위원회를 통해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며 “소위원회의 구성과 일정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소위원회에서 논의하게 되는 쟁점은 △대표소송 결정주체 일원화 △수탁위의 비경영참여 주주제안 확대 △기후변화·산업안전 관련 중점관리사안 신설 △해외주식 차등의결권 관련 등이다.
대표소송은 투자한 기업의 이사 등이 기업 가치를 떨어트리는 행위를 했음에도 기업이 이에 대한 조처를 하지 않을 때 주주가 문제가 된 이사를 대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기준 950조원에 달하는 기금을 운용하면서 국내 주식시장에서도 ‘큰 손’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이 대표소송에 실제로 나서게 되면 국내 기업 상당수가 국민연금 사정권에 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논란은 국민연금이 지난 2019년 도입을 결정하고도 대표소송을 실제로 시행하지 않다가, 이번 수탁자지침 개정을 통해 절차를 정비하려고 나서면서 발생했다. 특히 대표소송 개시 결정권을 기존 기금운용본부가 아닌 외부 위원으로 구성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에 맡긴다는 대목이 재계 반발을 샀다. 지난해 논의가 한 차례 보류된 후 경제단체들은 토론회를 열고 대표소송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 차관과의 면담을 통해 우려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다.
한편 기금위가 이번에도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하면서 다음 달 대선을 앞두고 결정을 미뤘다는 비판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기금위는 지난해 연기금 매도세 논란 당시에도 국내주식 목표비중 허용범위를 확대하는 리밸런싱 안건을 4월 재보궐 선거 이후로 미뤄 처리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