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난해 5월 화웨이 장비의 ‘백도어(정보를 정부에 유출)’가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면서 화웨이를 거래제한 기업으로 지정하고, 대미(對美) 수출을 차단했다. 올해 5월에는 이 조치를 1년 더 연장하고, 화웨이와 협력업체들의 미국 기술과 소프트웨어 사용도 금지시키는 한편 유럽 등 다른 나라에도 화웨이 장비 사용을 자제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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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월스트리트저널 등은 14일(현지시간) 영국 정부가 중국 화웨이 퇴출을 공식화했다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승리라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영국 이동통신사들은 연말 이후에는 화웨이의 5세대(5G) 네트워크 장비를 구입할 수 없고, 이미 설치된 화웨이 장비는 2027년까지 모두 제거해야 한다. 이는 올해 초 영국 정보부가 “화웨이 장비에는 문제가 없다”며 미국의 화웨이 압박에 불응했던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화웨이는 5세대 무선 네트워크 기술을 기반으로 한 5G 네트워크 장비를 생산하는 업체로 글로벌 시장에서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서방 국가들 사이에서 ‘화웨이에게 한 발 뒤쳐졌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이에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5G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화웨이 장비 사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영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같은 상황에서 영국이 화웨이 퇴출을 갑작스레 발표한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인 이유는 미국이 지난 5월 발표한 추가 제재가 자리잡고 있다. 미국은 지난 5월 화웨이와 협력사들이 더이상 미국 기술로 만든 반도체 등 핵심부품을 사용할 수 없다는 내용의 조치를 발표하고 오는 9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영국 정부는 미국의 제재 이후 핵심부품 공급에 차질이 생긴 만큼 화웨이 장비의 품질과 사업 자체의 지속가능성이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영국 내 반중정서도 영향
중국의 홍콩 국보법 시행에 따른 반중(反中) 정서도 이번 결정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는 지난 6월 30일 홍콩 국보법을 만장일치로 가결하고, 홍콩 주권반환 23주년인 7월 1일 전날 밤 11시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국보법은 홍콩 민주화 시위를 탄압하고 반중 세력 숙청을 용이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영국은 지난 1997년 홍콩 중국 반환에 앞서 1984년 ‘영국-중국 공동선언(홍콩반환협정)’을 체결했으며, 여기에는 중국 반환 이후에도 50년간 홍콩이 자치권을 보장받는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런데 중국이 국보법을 강행하면서 이를 지키지 않은 점이 영국의 반중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올리버 다우든 영국 디지털 문화 미디어 체육부 장관은 “몇 가지 사실관계가 달라졌기 때문에 우리의 접근방식도 달라졌다”며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국가안보와 경제를 위해 장단기적으로도 옳은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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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영국이 미국의 화웨이 때리기에 동참하면서 미중이 새로운 기술냉전에 돌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이 인공지능(AI)이나 로봇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서구 국가들과의 격차를 좁혀가는 반면, 자국민 인터넷 사용은 검열을 강화하는 등 이념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어서다.
로버트 한니건 영국 디지털감시기구 전 국장은 “서구는 민주사회와 정반대 가치를 가진 나라에 과도하게 의존해오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며 “화웨이와 중국 회사들에 사이버 안보 문제가 현존하지만 주된 위협은 홍콩 사태에서 보듯 중국 공산당의 의도”라고 지적했다.
다른 국가의 동참 여부에도 눈길이 쏠린다. 현재까지 미국과 상호첩보동맹을 맺은 ‘파이브아이즈(미국·캐나다·영국·뉴질랜드·호주)’ 중 화웨이에 핵심부품 공급을 중단한 나라는 호주와 영국이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번 주 프랑스 파리에서 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 측과 만나 유럽 내 화웨이 해핵심부품 금지 동참을 호소할 것이란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