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지방의 한 재건축 조합장은 2019년 특정 건설사로부터 시공자에 선정되도록 애써달라는 청탁과 함께 뒷돈을 받았다. 조합원들에게 식사와 선물을 제공하면서 이 건설사를 밀어달라고 했고, 결국 총회 결과는 의도한 대로 나왔다. 이 사례에서 조합원 수백 명을 접촉하고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게 바로 OS 업체로 불리는 홍보업체였다. | 여의도 재건축 아파트 일대 모습.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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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조합이 용역계약을 맺는 홍보회사 OS(outsourcing) 업체가 일으키는 폐단을 차단하고자 ‘조합원 전자투표’ 방식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일어 주목된다. 조합원과 OS 업체 간에 접촉을 아예 단절시켜서 의견이 왜곡되고 헛돈이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려는 취지이다.
22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최근 정비사업 백서를 발간한 서대문구청은 조합원 총회에서 까다로운 조건 없이 전자투표를 진행할 수 있도록 국토교통부에 도시정비법 개정을 건의할 계획이다. 현재는 태풍·폭설이나 화재·붕괴와 같은 재난 상황이 발생해야 허용된다.
이는 OS 업체와 조합원의 접촉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취지다. 정비사업을 추진하려면 단계별로 조합원의 찬성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이를 조합이 집적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조합은 OS업체와 용역계약을 맺고 조합원 의견을 수렴하게 된다. OS 업체 소속의 이른바 OS 요원이 개별적으로 조합원을 접촉하고 동의서를 받아오는 식이다. 조합이 설립하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총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조합원은 서면으로 의견을 제출하는데, 이때 OS 요원이 서면 결의서를 수집해 조합에 전달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의견이 왜곡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조합원이 OS 요원에게 전해 들은 사업의 내용과 실제 사업 내용이 다른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일부 건설사는 직접 OS 업체를 차려 운영하는 탓에 조합원보다 자사 이익에 유리한 활동을 펴기도 한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정비사업 민원 상당수는 ‘OS 요원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라고 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통상 조합원이 1000명이면 투입되는 OS 요원이 100명 정도”라며 “이들에게 지급하는 일당은 동의서를 얼마큼 받는지에 따라서 많게는 20만 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런 구조가 OS 업체의 과욕을 불러 조합원 의견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일부 조합은 OS 업체와 유착하는 폐단도 있다. 용역비를 과다하게 집행하거나, 일부는 이런 식으로 사업비를 횡령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최근 관내 정비사업 중심으로 백서를 발간한 서대문구청이 OS 업체 폐단을 지적한 것은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 서대문구청 관계자는 “정비사업에 OS 업체가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여러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