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과 결혼했다"...화마와 싸우다 별이 된 두 영웅[줌인]

김수광 소방교·박수훈 소방사 화재 현장서 순직
김 소방교, 인명구조사 시험 합격 구조대 자원
박 소방사, 특전사 근무 중 경채로 임용
동료 소방관 "늘 퇴근하고도 훈련에 몰두…맘 너무 아파"
  • 등록 2024-02-01 오후 4:16:21

    수정 2024-02-01 오후 7:20:02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소방과 결혼했다.”

지난달 31일 저녁 경북 문경에서 발생한 화재로 20~30대 젊은 소방관 두 명이 순직하면서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이 두 명의 소방관들은 평소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소방과 결혼했다’고 말할 정도로 직업적 소명의식과 사명감이 투철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전국 7만 소방관들의 마음은 더욱 무겁게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순직한 두 명의 소방관들은 경북 문경소방서 119구조구급센터 소속 김수광(27) 소방교와 박수훈(36) 소방사다.

1일 오전 경북 문경시 신기동의 한 육가공업체 공장 화재 현장에서 소방당국이 구조활동 도중 고립됐다가 숨진 구조대원을 발견해 수습하고 있다. (사진=뉴스1)
김 소방교 등은 지난달 31일 오후 7시47분께 경북 문경시 신기동 소재 한 육가공업체에서 불이 나자 현장에 출동했다. 그들은 화재가 발생한 건물에서 사람들이 대피하는 것을 발견하고 내부 인명 검색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공장 내부로 진입해 한참 인명 수색을 벌이던 이들은 불길이 더욱 거세지며 확산할 조짐을 보이자 건물 밖으로 일단 나가기로 하고 계단을 찾아 내려가다 내부 골조 등이 무너지면서 끝내 탈출하지 못하고 건물 3층에 고립됐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공장 직원들이 없는지 인명 수색을 펼치다 결국 본인들이 대피하지 못한 상황이 된 것이다.

31일 늦은 밤 남화영 소방청장까지 현장에 급히 내려가는 등 소방청과 경북 소방본부는 고립 소방관들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결국 이들은 1일 새벽 현장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지난달 31일 경북 문경 육가공업체 화재 현장 모습. (사진=소방청)
순직한 김 소방교는 2019년에 공개경쟁채용으로 임용돼 재난 현장에서 위기에 처한 국민을 구하겠다는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화재대응능력 취득 등 꾸준히 자신의 역량을 키워 왔다. 지난해엔 소방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취득하기가 어렵기로 소문난 인명구조사 시험에 합격해 구조대에 자원했다.

박 소방사는 특전사에서 근무하던 중 ‘사람을 구하는 일이 지금보다 큰 보람을 느낄 수 있겠다’ 는 마음으로 지난 2022년 구조 분야 경력경쟁채용에 지원해 임용됐다. 미혼인 박 소방사는 평소에 ‘나는 소방과 결혼했다’고 얘기할 만큼 소방 업무와 조직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이번 사고로 순직한 대원들은 모든 재난 현장에서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구조 활동에 임해 선후배 가릴 것 없이 높은 신망을 얻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지난해 7월 경북 북부 지역을 강타한 집중호우로 인해 실종된 문경시 및 예천군 실종자를 찾기 위한 68일 간의 수색 활동에 두 사람 모두 누구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 실종자 발견에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두 순직 소방관과 문경소방서 동료인 김태웅 소방사(30)는 두 사람에 대해 늘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소방관으로 기억했다. 김 소방사는 “수훈이 형은 동기였고 수광 반장은 나이는 어리지만 선배였다”며 “두 사람은 (소방 업무 관련) 자격증 공부를 위해 서로 격려하는 사이였다. 늘 퇴근을 하고도 함께 로프를 탄다든지 훈련에 몰두했다”고 했다. 이어 “두 사람은 힘든데도 항상 웃었고 수훈 형은 힘든 업무 중에도 먼저 장난을 치면서 분위기를 좋게 만들며 ‘내가 형이니 먼저 할게’라며 나섰다.

수광 반장은 본인이 가장 고생하면서도 먼저 ‘고생한다’고 말해 주는 선배였다”고 회고했다. 인터뷰 도중 터져 나오는 울음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김 소방사는 “제가 현재 행정 업무를 맡고 있는데 사고 소식을 듣고 현장에 달려올 때까지만 해도 실감이 안 났는데 발견되고 나서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경북 문경시 육가공제조업체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박수훈(35) 소방사가 생전 동료에게 큰 웃음을 주기 위해 2022월 1월 14일 SNS에 ‘허잇챠’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박 소방사가 특수복을 입은 채 신나게 춤을 추는 모습이 담겨 있어 주변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사진=박수훈 소방사 SNS 캡처)
이날 두 소방관의 안타까운 순직 소식이 전해지자 소방청은 물론 정치권까지 일제히 애도의 뜻을 밝혔다.

먼저 윤석열 대통령은 1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헬스케어혁신파크에서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의료개혁’이란 주제로 8번째 민생토론회를 개최한 자리에서 모두 발언을 통해 순직 소방관 얘기를 먼저 꺼냈다. 그는 “문경에서 발생한 큰 화재로 구조 작업 중에 소방관 두 분이 돌아가시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습니다”며 “이 토론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김수광 소방교, 박수훈 소방사 두 분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과 동료, 소방관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유가족 지원 등 필요한 일들을 세심하게 챙기겠습니다”고 약속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이날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고 순직 소방관들의 문경 빈소를 찾는 등 정치권도 일제히 두 소방관을 애도했다.

소방청은 두 소방관을 추모하기 위해 1일부터 오는 7일까지를 애도 기간으로 정하고 영결식이 열리는 오는 3일까지 조기를 게양하기로 했다. 또 고인들에 대해 옥조근정훈장 추서와 1계급 특진, 국립묘지 안장 및 국가유공자 지정 등 부족함 없는 최고의 예우를 약속했다. 순직자에 대한 명예롭고 경건한 영결식을 위해 순직 사고 처리 지원단을 구성해 장례 절차와 영결식 등 제반 사항을 적극 지원하고, 애도 기간 동안 전국의 모든 소방 공무원은 근조 리본을 패용하고 고인을 추모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같은 아픔을 경험한 순직 유가족으로 구성된 심리지원단을 활용해 유가족을 위로한다. 향후 유가족의 생활 안정을 위한 각종 지원 절차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조직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지원하며, 유가족과의 정기 간담회를 통해 지속적인 소통을 지속할 계획이다. 아울러 직접 분향을 할 수 없는 시민들이 고인을 위한 추모글을 게시할 수 있도록 소방청 누리집에 순직소방관 사이버추모관을 운영한다.

남화영 소방청장은 “유족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며 “고인들의 고귀한 헌신과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국민 안전을 위해 더욱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경북소방본부는 고인들의 고향인 경북 구미·상주 소방서와 경북도청 동락관, 문경소방서 4곳에 오는 5일까지 분향소를 운영하며 소방청은 세종정부청사(17동) 야외에 시민 분향소를 설치해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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