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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M 기반 PC용 CPU ‘급부상’
로이터통신은 23일(현지시간) 업계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AI칩 선두주자 엔비디아가 조용하게 PC칩 개발에 나섰다”며 “ARM의 반도체 아키텍처(설계기반)를 활용해 오는 2025년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AI용 칩인 그래픽칩(GPU)을 통해 반도체 ‘대장주’로 급부상한 엔비디아가 이제는 CPU 시장까지 넘보는 것이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돼 있는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전 세계 6위다. 애플, MS, 사우디 아람코, 구글, 아마존 정도만 앞에 있다.
엔비디아의 CPU 진출이 주목받는 것은 그 여파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당장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업체는 인텔이다. 인텔은 자체 x86 아키텍처 기반의 제품을 통해 절반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는 PC용 CPU 최강자다. 대중에 친숙한 로고인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는 이와 관련이 있다. 이때 인텔과 일종의 동맹을 맺은 곳이 MS다. 인텔 CPU를 등에 업고 MS가 PC 운용체제(OS) 윈도를 판매하면서 ‘윈윈’ 효과를 거둔 것이다.
증권사 번스타인의 스테이시 래스건 연구원은 CNBC에 나와 “엔비디아의 CPU 진출은 ARM 생태계를 본격적으로 키우는 계기”라고 진단했다. 로이터통신은 “엔비디아가 인텔의 아성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GPU와 AI칩에 이어 반도체 사업 다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호재다. 이날 주가가 3.84% 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인텔 주가는 3.06% 떨어졌다. 인텔은 올해 2분기 전체 매출 129억달러 중 PC칩이 68억달러에 달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 PC용 CPU 아성마저 무너진다면 진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요 빅테크들은 주판알 튕기기에 분주하다. 최대 수혜 기업은 ARM이다. 저전력을 내세워 모바일 CPU 표준을 주도했던 ARM은 이제 PC와 노트북에서도 인텔 x86 계열 프로세서의 독점적인 지위를 무너뜨릴 기회를 잡았다. 애플은 이미 노트북용 M2 등 고성능 ARM 칩셋을 선보였다. 여기에 엔비디아, AMD, 퀄컴까지 가세하면 설계 분야에서는 ‘ARM 천하’가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웬만한 기기에 들어간 핵심 반도체에는 모두 ARM 설계도가 깔리는 시대라는 의미다.
ARM은 이미 독보적인 업계에서 존재감을 뽐내 왔던 회사다. ARM을 소유한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엔비디아로의 매각을 추진하자, 대다수 반도체 기업들이 “그러면 엔비디아가 ‘수퍼 갑’이 된다”며 강력 반발해 매각이 불발된 것은 유명한 사례다. ARM 주가는 이날 무려 4.89% 급등했다.
반도체뿐만 아니다. 엔비디아의 CPU 진입은 PC 시장까지 뒤흔들 수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소식통은 로이터통신에 “MS는 윈도 호환칩 개발을 위해 퀄컴과 독점 계약을 맺었다”며 “내년 계약 만료 이후 복수의 경쟁업체에게 시장 진입을 권유할 것”이라고 전했다. 과거 인텔처럼 단일 업체에 의존하지 않고 여럿에게 칩 생산을 독려해 생산단가를 낮추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맥PC를 통해 대항하고 있는 애플을 견제하려는 포석까지 있어 보인다. 발 빠르게 ARM 아키텍처를 통한 칩 개발에 나서 왔던 애플 역시 그렇게 나쁜 시나리오는 아니다.
일각에서는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TSMC까지 수혜를 볼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인텔 중심의 CPU 시장이 ARM 기반의 엔비디아, AMD, 퀄컴 등으로 다변화한다면, TSMC는 이 고객사들과 협력을 더 강화하려고 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TSMC가 근래 AI칩 위탁생산을 사실상 도맡고 있다 보니, CPU 시장의 지각변동이 삼성전자(005930) 파운드리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 역시 적지 않다.
래스건 연구원은 “엔비디아의 소식은 모든 반도체 기업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며 “각 회사들이 추후 반도체 사업에 있어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