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산모들이 태교여행을 줄줄이 취소하고 있다. 지카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면서 해외 출입을 자제하자는 의미에서다. 아직 한국 등 아시아에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는 ‘국제보건 비상사태’ 선포를 고려할 정도로 경계심이 커지는 추세다.
지카바이러스는 뎅기열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와 동일한 ‘플라비바이러스(Flavivirus)’ 계열로, 1947년 우간다 원숭이에서 처음 발견된 후 숲 이름을 따 지카바이러스로 명명됐다. 이집트숲모기를 비롯해 주로 바이러스에 감염된 숲모기에 물리면 사람에 감염된다.
WHO에 따르면 보통 2~3일, 최대 2주간 잠복기를 거친 뒤 발열·발진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강한 사람이 감염되면 감기처럼 살짝 앓다가 지나간다. 증상이 없는 경우도 80%에 가깝다. 문제는 임산부가 감염됐을 때다. 태아에게 바이러스가 전이되면 신경계 세포를 공격, 머리둘레가 32㎝ 이하로 태어나는 ‘소두증’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카바이러스는 현재 중남미 지역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브라질에서만 4000건이 넘는 사례가 보고됐고, 이 중 270건이 소두증으로 확인됐다. 소두증 태아 가운데 숨진 아이는 12명이나 된다. 중남미 20여 개국으로 퍼진 데 이어 최근에는 미국, 스웨덴, 이탈리아, 영국 등에서도 감염 사례가 보고됐다.
오는 8월에는 브라질 리우올림픽이 열려 바이러스가 전세계로 확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브라질 의료진 및 보건당국은 확실한 원인이 파악되고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임신을 피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태아는 성인과 달리 면역체계가 떨어져 바이러스에 취약하다. 모체로부터 지카바이러스에 감염된 태아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지카바이러스가 소두증의 원인이라고 100% 확신할 단계는 아니지만 바이러스로 특정 부분이 손상을 입기 쉽다. 뇌와 관련된 부분이 다치면 소두증이 유발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태준 원장은 “현재 효과적인 백신이 개발돼 있지 않아 바이러스가 유행하는 지역으로 여행을 피하는 등 보건당국의 지침을 따르는 게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가 여행 경고국으로 지정한 나라는 볼리비아, 에콰도르, 가이아나, 브라질, 콜롬비아, 엘살바도르, 프랑스령 가이아나, 과테말라, 온두라스, 멕시코, 파나마, 파라과이, 수리남,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14개국이다. 이들 국가뿐만 아니라 모기가 많은 따뜻한 지역으로 여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백신은 지난해부터 다국적 제약사를 중심으로 개발되고 있다. 임상시험 등을 거치려면 최소 5년 이상 걸리는 게 현실이다. 지카바이러스가 발병한 국가를 방문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모기가 걱정돼 살충제를 뿌렸을 때 태아에게 이상이 없을지 고민하는 산모도 있다. 김 원장은 “살충제 사용은 바이러스 매개 모기를 박멸하는데 효과적이고 임신 및 수유 중 사용해도 태아에게 큰 영향은 없다”며 “가능하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인증을 받은 제품을 사용하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아직까지 국내 감염 사례는 보고된 바 없지만 바이러스가 모기를 매개체로 하는 만큼 안심할 수 없다. 지난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를 겪었듯 전염병의 특성상 환자가 단 한 명만 유입되더라도 대응에 실패하면 확산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질병관리본부는 국내 자생하는 흰줄숲모기도 지카바이러스의 매개체라고 밝혔다. 해외에서 감염된 사람이 걸러지지 않고 입국한 뒤 모기에 물리면 다른 사람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사람은 통제해도 모기는 통제가 불가능한 만큼 전파 위험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함께 풍진이나 사이토메갈로바이러스도 소두증을 일으킬 수 있다. 임신 중이거나 계획하고 있는 여성은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주의하고 풍진백신 등 예방접종에도 각별히 신경 쓸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