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TF1, 프랑스2 방송과 진행한 생중계 인터뷰에서 “단기적인 여론조사 결과와 국가 전체의 이익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후자를 택하겠다. 떨어진 인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며 이렇게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직접 국민을 상대로 연금개혁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연금개혁이 자신의 정치 생명을 위협한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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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행정부는 연금 100%를 받을 수 있는 정년(법정 은퇴 연령)을 현행 62세에서 64세로 2년 연장하는 안을 골자로 하는 연금개혁안 공포를 앞두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당초 상·하원 표결을 거칠 예정이었으나, 야당의 극심한 반대로 하원 부결 가능성이 커지자 헌법 49조 3항을 발동해 표결 없이 통과시키는 초강수를 뒀다. 이후 민주주의를 경시했다는 비판과 함께 ‘정권 심판’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지지율은 추락하고 프랑스 전역에선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항의시위가 수개월 전부터 지속되고 있다.
프랑스의 현재 정년(62세)은 다른 주요 국가들보다 낮다. 개혁안에 따라 2년 더 늘려도 독일·이탈리아(67세), 스페인(65세) 등을 밑돈다. 미국과 영국은 정년을 폐지했다. 프랑스의 기대수명은 우상향 추세로 2020년 기준 82.18세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이는 프랑스 은퇴자들의 연금 수령 기간(단순 계산시 20.18년)이 더 길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프랑스의 연금 재정은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 프랑스 재정경제부는 현행 제도를 유지하면 연금 적자가 2030년 135억유로(약 19조원), 2050년엔 439억유로(약 62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반면 연금 재원을 확보할 여력은 줄어들고 있다. 출생률 하락과 베이비부머 은퇴가 맞물려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활동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프랑스 여성 1인당 출생률은 2010년 2.03명에서 2020년 1.83명으로 줄었다. 인구 1000명당 신생아 수는 2020년 10.9명으로 사상 처음 11명을 하회했다. 프랑스 연금오리엔테이션위원회(COR)에 따르면 연금수혜자 1명당 연금기여자 수는 1960년 4명에서 2019년 1.71명으로 급감했고, 2040년 1.5명, 2070년 1.2명 등 지속 감소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마크롱 대통령은 연금 100% 수령을 위한 기여 기간을 42년에서 43년으로 늘리고, 그 시기도 2035년에서 2027년으로 8년이나 앞당겼다. 마크롱 대통령은 “내가 (2017년 5월 첫 번째 임기)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연금 수급자가 1000만명이었으나 (6년이 지난) 지금은 1700만명이 됐다. 2030년에는 2000만명이나 된다”며 “지체할수록 상황은 더 악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반발을 줄이기 위한 ‘당근’도 제시했다. 최소 연금 상한액을 최저임금의 75%에서 85%로 높여 월 수령액을 1015유로(약 143만원)에서 월 1200유로(약 169만원)로 늘렸다. 마크롱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연말에는 연금개혁을 시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속도전 의지를 다졌다. 올해를 연금개혁 원년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거듭 피력한 것이다.
연금개혁안은 지난 20일 야권의 내각 불신임 시도가 실패함에 따라 자동으로 하원을 통과한 효력을 가졌다. 이제 헌법위원회(한국의 헌법재판소 격)의 위헌 여부와 마크롱 대통령의 승인만 남겨둔 상태다. 개혁안은 9월 발효될 것으로 전망되며 발효시 2030년 177억유로(약 25조원) 연금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