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는 효성그룹장으로 내달 2일까지 5일장으로 치러진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가 명예장례위원장을, 이상운 효성 부회장이 장례위원장을 맡는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영결식은 내달 2일 오전 8시 열릴 예정이다.
대학교수 꿈꾸다 경영자의 길로
조석래 명예회장은 1935년 경상남도 함안 출신으로, 고(故)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의 첫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경기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일본 와세다대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일리노이대 화학공학과 석사를 마치고 대학교수를 준비하다 부친의 부름을 받고 1966년 효성의 모태인 동양나이론 울산공장 건설에 참여하며 본격적인 경영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효성그룹 2대 회장으로 1982년부터 2017년까지 35년간 그룹을 이끌었다. 원천 기술을 기반으로 섬유·첨단소재·중공업·화학·무역·금융정보화기기 등 효성의 전 사업부문에서 한국을 넘어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기술 중시 경영..스판덱스 연구개발도 직접 지시
그는 기술 중시 경영을 펼치며 ‘경제발전과 기업의 미래는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개발력에 있다’는 경영 철학을 강조했다. 이는 효성그룹의 핵심 DNA가 되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발전의 토대가 됐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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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효성은 2011년 한국 기업으로는 최초로 ‘꿈의 신소재’인 탄소섬유를 독자기술을 통해 개발에 성공했다. 구창남 전 동양나이론 사장은 “공학도 출신의 조 명예회장은 치밀하게 분석하고 기술을 이해한 뒤 확신이 들면 사업을 전개하는 스타일”이라고 회고했다.
韓 재계 중추적 역할..민간 외교관도
조 명예회장은 그룹 경영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재계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맡아왔다. 조 명예회장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31·32대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특히 전경련 회장 재임 당시 “물고기가 연못에서 평화롭게 노닐고 있는데 조약돌을 던지면 사라져버린다. 돈도 같은 성격이어서 상황이 불안하면 투자가 일어나지 않는다”며 기업의 투자 환경 개선을 촉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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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은 내가 들수 있어”...허례허식없이 소탈
조석래 명예회장은 재계에서 허례허식 없이 소탈한 경영인으로도 손꼽힌다. 겉치레로 격식 차리는 것을 좋지 않게 여겼고, 회장이라고 특별 대우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해외 출장을 갈 때도 수행원 없이 늘 혼자 다닐 정도였다.
중국에서 귀국하는 길에 마중 나온 임원들이 가방을 대신 들어주려고 하자 “내 가방은 내가 들 수 있고 당신들이 할 일은 이 가방에 전략을 가득 채워주는 것”이라고 한 일화가 유명하다. 과거 일본에 출장을 갈 때는 자동차를 고집하기 보다 전철을 이용한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