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미국으로 유학 보낸 김모(57)씨는 명동·남대문 인근에 있는 사설 환전소를 찾아다니고 있다. 딸에게 생활비를 보내줘야 하는데 환율이 너무 올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서다. 이렇게 사설 환전소에서 환전하면 시중은행보다 2~3% 정도 싸게 환전할 수 있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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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돌파하면서 미국에 자녀를 유학 보낸 부모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22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을 전 거래일보다 15.5원 오른 1409.7원에 마감했다. 13년 6개월 만에 1400원을 넘어섰다.
뉴욕으로 아들을 유학 보낸 유모(55)씨는 “아이를 유학 보낸지 3년째인데 보낼 때와 비교해서 올해는 1500만원 정도 더 들어가는 것 같다”며 “모아놓은 돈으로 버티고 있는데 언제까지 버틸지는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캘리포니아로 아들을 유학 보낸 김모(61)씨는 “환율이 너무 올라 부담스러워서 이번 학기까지만 다니고 잠시 귀국하는 게 어떤지 아들에게 물어봤다”며 “다행히 아들이 내년에 군대를 간다고 해서 한시름 덜었다”고 말했다.
환율이 조금이라도 떨어지길 기대하며 학기 단위로 주던 생활비를 월 단위로 나눠 보내는 경우도 많다.
부모의 한숨이 깊어지자 유학생들도 생활비를 줄이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 뉴욕에서 유학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박진성(가명)씨는 “뉴욕은 집값이 너무 비싸 친구와 집을 합쳤다”며 “월 1500달러 정도 들었는데 이제는 700달러 정도로 줄어들었다. 뉴저지 쪽으로 옮겨서 멀어졌기는 했지만 그나마 살만해졌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를 찾는 유학생도 늘고 있다. 원칙적으로 학생 비자로는 일을 할 수 없지만 당장 용돈이 궁한 탓이다. 뉴욕에서 학부 과정을 수료 중인 김민수(가명)씨는 “번역이나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며 “현금으로 월 800달러 정도를 벌어 부모님의 부담을 줄여 드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4인 가족 점심 한끼 20만원”…주재원 외식도 못해
미국 뉴욕시 맨해튼에 일하고 있는 주재원 이모(43)씨는 “얼마 전 한국에서 3000달러를 송금했는데 원화로 430만원에 가까웠다”며 “송금 적용 환율은 이미 1400원을 돌파했고 기타 중개수수료 등이 더 붙어, 지난해 초 원·달러 환율이 1100원을 밑돌 당시와 비교하면 3000달러 송금 기준으로 100만원 안팎 손해를 보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오른 주택 임대료로 체재비의 상당 부분을 지출하는 이씨는 “외식은 자제하고 코스트코처럼 가격이 저렴한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서 요리해 먹는 게 일상이 됐다”고 전했다. 4인 가족이 비빔밥, 순두부찌개와 같은 평범한 한식으로 점심을 먹어도 100달러를 훌쩍 넘기 일쑤다. 여기에 인플레이션이 치솟은 이후 음식값 외에 주는 팁은 기본이 20%다. 그보다 적게 주면 식당 눈치를 보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탓이다. 결국 점심 한 끼 외식에 들어가는 비용은 150달러 안팎, 원화로 20만원은 각오해야 한다. 한국식 치킨(닭튀김) 한 마리 가격은 팁을 주지 않고 픽업만 해도 30달러 안팎으로 4만원이 넘는다. 식당에서 먹는다면 그보다 훨씬 비싸다.
문제는 환율이 더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나라들의 통화가치가 곤두박질치는 와중에 달러화만 나홀로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3연속 0.75%포인트 인상하면서 고강도 긴축을 계속할 것임을 강조한 만큼 당분간 강달러 기조는 계속될 전망이다. 1500원대까지 열어둬야 한다는 말이 외환시장에서 나올 정도다.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지수화한 달러인덱스는 최근 110선 위에서 고착화하는 기류다. 2002년 이후 20년간 볼 수 없던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