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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은행들 미리 대출 줄였다
2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인용한 유럽중앙은행(ECB) 집계를 보면, 지난달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은행들은 기업들에 대한 대출을 한 달 전보다 32억3000만달러(약 30억유로·4조2000억원) 축소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4.9% 늘었는데, 다만 이는 전월인 1월 5.3%보다는 다소 둔화한 것이다. 은행들은 가계 대출 역시 줄였다고 WSJ는 전했다.
지난달은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은행, 스위스 크레디트스위스(CS)가 무너지기 직전이다. 당시만 해도 은행들은 고금리 덕에 기업 대출을 통해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으나, 미리 리스크를 감지하고 대출 줄이기에 나선 셈이다. ECB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불거진 초인플레이션에 대응하고자 기준금리를 3.50%까지 급격하게 인상하는 과정에서 은행 자산 가치가 줄어든데 따른 것이다. 전형적인 신용 경색의 전조 단계다.
버트 콜리즌 ING은행 이코노미스트는 “금리 인상이 경제에 완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현재 시점에서는 매우 불확실하지만 최근 은행권 혼란은 (대출 축소에 따른 신용 경색으로) 경제 활동에 타격을 줄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 시스템 리스크 우려는 점차 잦아드는 분위기이지만, 경기 침체는 피하기 어렵다는 의미로 읽힌다.
루이스 데긴도스 ECB 부총재는 최근 “앞으로 유로존 신용 기준이 더 빡빡해질 것”이라며 “이는 저성장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파비오 파네타 ECB 집행이사는 “(이전 통화 긴축 시기보다 가파른 은행 대출 감소는) 그 속도와 규모로 볼 때 통화정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강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라고 주장했다.
유럽뿐만 아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내 매파로 꼽히는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CBS에 나와 “우리에게 불확실한 것은 이번 은행권 스트레스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신용 위기로 이어지고 있는지 여부”라며 “은행권 혼란은 미국 경제를 침체에 더 가깝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시스템 리스크를 두고서는 “미국 은행 시스템은 탄력적이고 건전하다며 많은 유동성을 갖고 있다”고 낙관론을 폈지만, 신용 경색 가능성은 크게 봤다.
일각서 부동산發 은행 위기설
다만 금융위기 공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캐피털 이코노믹스(CE)는 미국 중소형 지역은행들의 비중이 큰 상업용 부동산을 고리로 최악의 경우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았다. CE에 따르면 중소형 은행들의 미상환(outstanding loans) 상업용 부동산 대출 규모는 전체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70% 수준이다. 중소형 은행들의 대출 포트폴리오에서 상업용 부동산의 비중이 40%에 이른다는 점에서,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닐 시어링 이코노미스트는 “중소형 지역은행과 상업용 부동산 사이에서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상업용 부동산 가치 하락→은행 건전성 우려에 따른 뱅크런(대량 예금 인출)→은행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 회수→상업용 부동산 가치 추가 하락 등을 통해서다. 시어링 이코노미스트는 “만약 부동산이 은행 시스템에서 더 깊은 불안감의 원천이 된다면, 주목해야 하는 분야는 상업용 부동산”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