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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선 선생은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 1918년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동흥학교 군사교관과 체육교사로 재직한 후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서 독립군 양성에 헌신했다. 1920년 12월 대한독립군단 중대장에 임명됐으며 1930년 7월 이청천과 홍진 등이 중국 위하현에서 결성한 한국독립당의 의용군 중대장으로 활동했다. 1934년 2월에는 중국 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 교관으로서 군관 양성 활동에 매진했다.
이후 김구 선생의 지시로 1936년 북경으로 파견돼 첩보활동을 벌이던 중 일본경찰에 체포돼 신의주 형무소에서 2년간 옥고를 치렀다. 1945년 11월 귀국해 대한국군준비위원회, 광복청년회, 대동청년단에 참여했다. 1948년 12월 육사 8기로 입교해 이듬해 육군대령으로 임관했고 전주지구위수사령관을 지낸 후 준장으로 예편했다.
정부에서는 오광선 선생에게는 1962년 독립장을, 정현숙 선생에게는 1995년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