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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의사로 있을 땐 제 기술로 수 십명을 치료했겠지만 기업인으로는 수 백, 수 천명을 치료하게 됐다는 게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연내에는 줄기세포 전문병원을 만들어 회사 제약부문과 시너지를 내겠다는 것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최근 세계 3대 인명사전인 ‘마르퀴즈 후즈 후’에 이름을 올린 김현수 파미셀 대표는 “학자들이 주를 이루는 곳에 순수 기업가로서 성공 사례가 등재됐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고 소소한 소감을 밝혔다. 의대 교수에서 기업가로 변신에 성공한 그는 인터뷰 내내 주위에 수많은 도움을 받아왔다며 겸손한 자세를 유지했다. 회사 현안과 향후 목표에 대한 질문에는 눈빛을 번뜩이며 의사로서의 날카로움을 보이기도 했다.
우연찮게 접어든 의사의 길… 필연으로
아주대 혈액종양내과 의사였던 그가 처음부터 이 직업을 꿈꿨던 건 아니었다. 학생 시절 앉아서 공부하는 것보다는 야구나 축구 같은 야외에서 하는 운동을 더 좋아하던 그였다. 지금도 일년에 몇차례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 일주를 하는 등 야외활동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당시 저명한 수원 산부인과 의사였던 선친의 유지로 의대에 입문하게 됐다. 전공 역시 처음에는 혈액내과를 희망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레지던트 시절 국내 최고 심장내과 의사로부터 선택실습을 받는 등 심장내과를 가려고 했지만 당시 지도교수의 권유로 혈액내과를 가게 됐다”며 “당시에는 익숙지 않은 과목이었지만 나중에 보니 혈액내과를 맡아 줄기세포인 ‘스템셀’을 알고 연구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의도치 않게 들어선 길이 훗날 줄기세포 치료 사업을 일구는 계기가 된 셈이다. 특히 어려서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환자를 돌보던 아버지를 지켜보며 의사로서의 책임감과 자세를 항상 배울 수 있었다. “‘의사들은 주작용보다 부작용에 대해 더 잘 알아야 한다. 약을 잘 써야 한다. 명의가 되기는 쉬운데 훌륭한 의사가 되는 것은 어렵다’라고 늘 조심해야할 부문을 알려주셨다”고 그는 회상했다.
임상의사로서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법 개발에 몰두한 그는 국내 최초로 자가 말초혈액 조혈세포를 이식하고 중간엽줄기세포 이식까지 성공하는 등 두각을 드러냈다. 당시 의사들이 큰 관심이 없었던 줄기세포 분야의 가치를 확인하고 연구에 매진한 성과다. “줄기세포는 연구의 폭이나 깊이가 굉장히 다양하지만 미래에는 예측 가능한 수준으로 다룰 수 있을 거라는 판단에 집중 연구, 병원으로부터 큰 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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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을 꾸려 줄기세포 치료에 매진하던 김 대표에게 2000년대 초 위기이자 기회가 찾아온다. 2002년 식품의약안전청(현 식품의약안전처)이 세포치료제를 의약품으로 분리해 관리토록 하는 법안을 마련한 것이다. 이때 마련된 법안은 그해 김 대표가 파미셀을 설립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당시 세포를 직접 치료에 사용하는 의사가 별로 없었지만 우리 대학 연구팀은 통상 항암 치료가 듣지 않는 말기 암환자의 세포 면역치료나 줄기세포를 이용한 골수이식 등 일정한 치료 방식이 있었다”며 “이를 유지하려면 제약회사를 만들어 약품으로 규정된 모든 과정을 거치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사업 초기에도 연구용역이나 중간체 판매, 줄기세포 기술 이전, 세포 운송용기 제조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적지만 꾸준한 매출을 냈다. 줄기세포 기술 이전의 경우 한 바이오기업에 줄기세포의 생산·품질관리·평가 등의 기술을 일괄 교육하는 방식으로 회사 매출에 큰 기여를 하기도 했다.
통상 신약 개발까지 수익이 전무하고 투자자금으로 꾸려나가는 다른 바이오 기업들과 달리 연구 과정에서도 매출에도 신경을 쓴 이유는 직원 월급은 밀리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에서다. 그는 “아무리 바이오기업이라도 최종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수익이 제로라면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말”이라며 “직원 월급 한번 밀린 적 없고 조금이라도 올려줄 수 있었다는 게 행운이다. 치료제 개발까지 수백억원이 들었는데 그때까지 투자만 받았다면 회사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오케미칼사업, 신성장동력으로 추진
김 대표가 차린 파미셀은 줄기세포를 치료에 활용하는 바이오 기업이다.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회사 줄기세포치료제 브랜드 이름은 세포(Cell)와 기록(Gram)을 합성한 ‘셀그램(Cellgram)’이다. 2011년 세계 최초 줄기세포치료제인 ‘하티셀그램-에이엠아이’를 개발했다. 이외 지난 10여년간 뇌졸중, 척수손상 간경변 줄기세포치료제의 상업화 임상시험 진입을 비롯해 각종 암·폐섬유화증, 파킨슨증후군 등 난치성 질환에 대한 연구자 임상과 응급임상시험을 진행해 가장 앞선 연구결과를 보유했다. 현재 뇌졸중과 척수손상, 간경변 등에 대한 임상을 진행 중이다. 내년 초에는 간경변 줄기세포 치료제의 미국 내 임상진입이 목표다.
줄기세포 치료제가 의약품으로서 정부 허가를 취득한 것을 가장 큰 성과로 꼽은 김 대표는 새로운 수익 창출을 위해 기존 바이오제약사업부 외 바이오케미칼사업부를 신설했다. 바이오 제약사업부는 줄기세포치료제 개발이 핵심 사업이다. 치료제 개발 과정에서 축적한 노하우로 성체줄기세포와 제대혈 보관사업도 수행한다. 줄기세포 배양액 추출물이 함유된 화장품도 개발·판매 중이다. 바이오케미컬사업부는 2012년 원료의약품 전문기업 아이디비켐을 인수해 2013년 합병, 신설된 사업부다. 원료의약품과 난연제를 생산하고 있으며 현재 새로운 형태의 첨단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또한 원료의약품은 미국에서 임상이 진행 중인 신약 프로젝트 3곳에 중간체로 공급되고 있다. 신약 개발에 공급하는 중간체 기술이 앞으로는 글로벌 대형 제약회사들을 ‘을’로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그는 기대했다. 신약 최종 제품이 만들면 원료는 기존 업체의 것을 그대로 써야 하기 때문에 대량 매출 발생 시 그대로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차세대 바이오 신약 개발에 필요한 의약품 규격에 해당하는 중간체를 상업적으로 생산하는 데는 업계 1~2위 수준”이라며 “제약회사가 원료를 바꾸려면 다시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독점적인 공급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연내 줄기세포전문병원 설립, 시너지 기대
외국 자본을 끌어들여 기업이 병원을 짓는 방안을 구상했고 올 초 송도에 투자개방형병원(영리병원) 설립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서울에 개인병원 형태 병원을 설립키로 방향을 틀었다. 현재 적당한 부지를 검토 중으로 이르면 연내 문을 열 예정이다.
그는 “송도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많아 시기상조라고 판단했고 단기로 확실하게 효과를 낼 수 있는 병원을 설립하기로 했다”며 “투자개방형병원은 2차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병원 설립을 통해 바이오 신약개발 기업으로 도약이라는 중장기 목표에도 한발짝 다가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김 대표는 “의사로서의 역할로 돌아가 줄기세포 치료제를 전문으로 사용해 환자를 치료하는 줄기세포 전문병원의 롤모델이 될 것”이라며 “줄기세포 치료 시장에 이바지하고 기업과 상생도 도모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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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파미셀 대표는
1964년 수원에서 태어나 1988년 연세대 원주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1992년 내과전문의 면허를 취득했다. 아주대 혈액종양내과 조교수, 경기대 생물학과 겸임교수, 아주대 대학원 분자과학기술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냈다. 2002년 파미셀을 설립했으며 현재 연세대 원주의과대학 겸임교수·외래부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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