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는 역사적으로 보듯 이번에도 어떻게든 합의점을 찾을 것으로 점치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단기자금이 안전한 투자처를 찾아다니면서 시중 유동성이 위축되고 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더 나아가 경기 침체 공포까지 높일 수 있다는 진단 역시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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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매카시 회동 ‘빈손 종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공화당 소속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을 비롯한 의회 지도부는 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직접 만나 부채 한도 문제를 논의했으나, 입장 차만 확인한 채 ‘빈손 종료’를 했다. 양측은 오는 12일 다시 회동하기로 했다.
미국 부채 한도는 ‘마이너스통장’과 비슷하다. 법으로 정해놓은 한도를 넘길 때마다 의회가 협상을 통해 높이는 식이다. 연방정부 부채는 올해 1월 법정 한도(31조4000억달러·4경2000조원)에 도달했다. 이때 국채 발행이 어려워진 재무부는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개설한 계좌인 일반계정(TGA)을 임시로 쓴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천명한 이른바 ‘X-데이트’(6월 1일)는 TGA 잔액까지 바닥 나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지는 시기를 말한다.
백악관과 민주당은 한도 상향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인 만큼 협상 불가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은 부채 한도 상향과 재정 지출 삭감을 연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시장은 협상이 결렬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이 예상보다 강경하게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월가 한 뮤추얼펀드의 매니저는 “여야가 예전처럼 한도를 1~2년 늘릴 수 있다”면서도 “이번에는 2024회계연도가 시작하는 10월 1일까지 일시 한도 증액에 합의하는 식으로 시간을 벌 시나리오가 더 유력해 보인다”고 말했다. 일단 위험을 피하고자 협상을 미룰 것으로 다수가 보고 있다는 게 이 인사의 설명이다. 특히 오는 12일 미국 의회예산국(CBO)가 10년치 재정수지 추계 보고서를 발표하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공화당의 세출 구조조정 목소리는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보고서가 재정적자 우려를 골자로 할 수 있어서다.
단기금리 폭등…역레포 자금 쏠려
그런데 부채 협상 리스크에 단기 채권 거래가 여의치 않아 지면서 MMF를 둘러싼 위기감은 커지는 기류다. 실제 뉴욕채권시장에서 X-데이트 근방에 있는 미국 국채 1개월물 혹은 2개월 금리는 최근 끝없이 치솟고 있다(가격 급락). 이를테면 1개월물 금리는 지난해 중순 이후 줄곧 1~3%대였으나, 이날 장중에는 5.627%까지 폭등했다. 또 다른 금융사의 한 채권 애널리스트는 “5% 중반대는 최근 수십년간 볼 수 없던 레벨”이라며 “국채시장이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인터랙티브 브로커스의 스티브 소스닉 수석전략가는 “미국이 실제 디폴트를 선언하지는 않겠지만 (그 협상 과정에서) MMF 시장은 유동성 경색이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월가가 주시하는 곳이 연준 역레포 시장이다. MMF 자금의 대안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뉴욕 연은에 따르면 지난 9일 미국에서 역레포의 하루 거래 대금은 2조2229억달러를 기록했다. 한국 돈으로 약 2943조원이다. 역레포 거래는 지난 3월 말부터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현재 사상 최대 수준이다. 역레포는 뉴욕 연은이 보유한 RP를 일시 매각하는 것을 말한다. 뉴욕 연은은 역레포 시장에서 RP를 팔아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며, 시중은행 등은 역레포 계약 만기일에 이를 다시 팔면서 연준으로부터 5.05%의 안정적인 수익을 얻는다. 월가가 우려하는 것은 역레포 거래가 급증하는 과정에서 단기자금시장의 ‘돈맥경화’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웰스파고 인베스트먼트의 폴 크리스토퍼 시장전략 책임자는 “(부채 협상을) 과거처럼 해결하지 못한다면 매우 불쾌한 충격이 될 것”이라며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월가의 한 고위인사는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이 부채 이슈를 계속 끌고 갈 것이기 때문에 몇 달간 단기자금시장은 크게 흔들릴 것”이라며 “다만 역레포 시장에 대한 분석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는 점은 불안하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재정 지출 축소, 소비 심리 약화, 성장 전망 둔화 등의 경로로 경기 침체를 앞당길 수 있다는 공포 역시 있다.
다만 크게 동요할 일이 아니라는 관측도 있다. ‘원조 채권왕’ 빌 그로스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디폴트 우려로 국채 단기물을 파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이것은 항상 해결해 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