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in]`일감 몰아주기`에 과세..첫 타자 누가 될까

글로비스·지흥 등 그룹 계열사 지원 타깃될듯
과세시기 따라 `면죄부` 악용 우려도
  • 등록 2011-03-31 오후 5:07:29

    수정 2011-03-31 오후 5:07:29

마켓in | 이 기사는 03월 31일 17시 04분 프리미엄 Market & Company 정보서비스 `마켓in`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이데일리 임명규 기자] 재벌 그룹의 전형적인 증여 수단으로 사용되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정부가 강력한 과세 방침을 내놨다. 나라의 곳간을 책임지는 세금 정책의 핵심 이념인 `공평과세` 원칙을 바로잡기 위해 더 이상 편법 증여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정부는 31일 서울 수송동 국세청에서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공정사회 구현을 위한 조세정의 실천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세금없는 변칙적인 상속·증여를 막기 위해 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과세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지난 2004년부터 정부는 증여세 완전포괄주의를 도입하면서 나름대로 `부의 편법 이전`에 대한 과세 의지를 표명했지만, 실제로 과세된 사례는 극히 적었다. 법에 명시되지 않은 부분을 섣불리 과세했다가 불복 절차가 진행되면 상급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치명적 결함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과세는 그 동안 시민단체와 학계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제기되던 이슈였다. 그룹 후계자는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고 해당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면 매출과 수익은 물론 주식 가치까지 상승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반면, 최대 50% 세율이 적용되는 증여세까지 피할 수 있다.

◇ 현대차·LG·CJ 등 계열 몰아주기 상당수 최근 일감 몰아주기의 대표적 사례는 현대차(005380) 그룹 계열사인 글로비스(086280)를 꼽을 수 있다. 지난 2001년 정몽구 현대기아차 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사장(현 부회장)이 설립한 글로비스는 현대차 그룹 계열사의 물류를 전담하면서 10년 사이 시가총액 5조원이 넘는 우량 기업으로 성장했다. 계열사 매출 비중이 90%에 이를 정도로 그룹 지원이 막강하다.

게다가 현대차 그룹은 글로비스에 대한 물류 가격까지 비정상적으로 높여준 것으로 드러나 추가로 법인세도 내고,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도 부과 받았다. 지난해 말 국세청은 현대차 그룹과의 세금 분쟁 과정에서 "글로비스의 설립 목적은 ○○○에게 세금부담 없이 재산을 무상이전시켜 그룹 계열사에 대한 지배권과 경영권을 확보해주기 위한 것이었다"며 강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글로비스 외에도 그룹의 계열 물량 몰아주기 사례는 상당수에 이른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LG그룹의 디스플레이 제조업체인 지흥은 구본준 부회장의 아들 구형모씨가 100% 지분을 가진 회사인데, 계열사인 LG디스플레이(034220)와 밀접한 사업 연관성을 갖고 있다. CJ CGV(079160)의 광고대행업체인 재산커뮤니케이션스도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동생인 이재환 CJ제일제당(097950) 상무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동국제강 그룹의 지배주주 일가가 90% 지분을 보유한 디케이에스앤드는 동국제강(001230)유니온스틸(003640)의 해상물류 매출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수형 OCI그룹 회장의 두 아들이 지분 59%를 보유하고 있는 넥솔론은 OCI(010060)로부터 원재료 매입을 의존하고 있으며, 세아그룹 이운형 회장의 자녀들이 9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우진정공도 계열사 매출 비중이 높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또 현대차그룹의 삼우, SK그룹의 인디펜던스, GS그룹의 승산과 STS로지스틱스, 정산이앤티, GS아이티엠, 켐텍인터내셔날, GS네오텍, 한진그룹의 지티앤에스, 두산그룹의 동현엔지니어링, CJ그룹의 CJ파워캐스트, 현대그룹의 현대투자네트워크, 효성그룹의 신동진, 웅진그룹의 경서티앤알, 코오롱그룹의 마우나오션개발, 코오롱베니트, 코오롱워터텍, 세아그룹의 세아네트웍스, 세아비엔케이 등도 지원성 의심 거래대상에 꼽혔다.

채이배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연구위원은 "물량 몰아주기는 회사기회 유용과 지원성 거래 사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전체 35개 기업집단 중 이에 해당되는 사례는 셀 수 없을 정도"라며 "물량 몰아주기는 법인세법상 특수관계자의 부당행위계산부인 규정을 우선 적용한 후, 증여세 과세 여부를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정부 작년부터 과세 카드 `만지작`..적용 시기가 관건

이날 정부가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명확한 과세 의지를 밝힌 것은 기존 증여세 포괄주의에도 불구, 실제 과세 단계에서는 관련 법령이 미흡하다는 판단에서 이뤄진 것으로 해석된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2조는 기여에 의해 타인의 재산가치를 증가시키는 행위, 제42조는 시가보다 높은 대가의 용역 제공에 대해 증여세를 과세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관련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등 하위법령이 미비해 과세에 이르기에는 무리기 있었다.

지난 2007년과 2009년에도 물량 몰아주기에 대한 과세 여부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당시 국세청은 "법인이 재산 또는 용역을 시가보다 낮거나 높은 가액으로 거래함으로써 주식가치가 증가한 것에 대해 당해 법인의 주주에게 증여세를 과세할 수 있는지 여부는 당해 사안이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2조·제42조 등에 해당하는 지를 사실판단해 결정할 사안"이라고만 밝혔다.

이후 정부는 다시 편법 증여 이슈에 대한 과세 카드를 본격적으로 검토했다. 지난해 10월 국세청은 한국조세연구포럼에 의뢰해 `증여세 완전포괄주의 과세제도 정착을 위한 법령 등 제도개선 연구` 용역을 마쳤고, 기획재정부는 현재 한국조세연구원을 통해 증여세 제도개선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증여세 완전포괄주의를 재검토하고, 편법 증여 이슈부터 다시 들여다본다는 방침이다.

정부가 새롭게 내놓을 카드는 기존 증여세 포괄주의 원칙에 일감 몰아주기를 `증여의제`를 얹어 과세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증여의제란 합병이나 감자, 전환사채 등 자본거래에 대한 유형을 증여로 간주하는 것인데, 여기에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한 규정을 추가해 증여세 과세 논리를 명확하게 만든다는 것.

다만 과세 시기를 소급 적용할 것인지 여부가 논란이 될 수 있다. 정부가 관련 법령을 고친다면 `법 시행일 이후 거래` 또는 `법 시행일이 속하는 과세연도의 거래` 등으로 과세 시기를 정해야 하는데, 이 경우 기존 재벌들의 편법증여 행위에 과세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

만일 기존 행위에 대해서도 소급 적용한다면 국민에게 경제적 손해를 끼치는 법 적용으로 위헌성 소지가 크기 때문에 재벌들이 편법 증여를 피해갈 수 있는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 편법 증여에 대해 촘촘한 법안을 만드는 일 못지 않게 적용 시기에 대해서도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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