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서울 강동구 상일동 삼성엔지니어링 글로벌엔지니어링센터(GEC) 로비에 800여명의 직원들이 대거 모였다. 8·15 광복절 특사에 이름을 올려 복권된 이 부회장을 보기 위해서였다. 지난 19일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반도체 R&D(연구개발)단지 기공식에 참석한 데 이어 닷새 만에 계열사를 방문하며 현장 경영 보폭을 넓힌 셈이다.
삼성엔지니어링은 4조5000억원 규모의 멕시코 타바스코주 도스 보카스 정유 프로젝트, 1조4000억원 규모의 사우디 자푸라 가스 처리시설 등 해외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이번 방문을 통해 중동사업에 보다 힘을 실어주는 한편, ‘기술 중시’ 경영 기조를 비전자 계열사에 확산시키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사업 점검도 있지만 이 부회장이 노린 ‘카드’는 또 있다. 이 부회장은 GEC 구내식당에서 임직원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격의 없는 소통 행보도 시작했다. 사내 어린이집을 방문해 운영 현황을 살펴보고 보육 교사들을 격려했다. MZ세대(1980~2000년대 초 출생)들은 이 부회장과 셀카나 단체 사진을 찍었고 최성안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은 ‘일일 카메라맨’을 자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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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회장이 복권된 이후 사내 스킨십 광폭 행보를 펴는 건 조직문화 변화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글로벌 기업과 초격차 기술을 다투기 위한 ‘뉴삼성’으로 도약하려면 일하는 문화부터 미래지향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게 이 부회장의 생각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미국 출장길에 “추격이나 뒤따라오는 기업과의 격차 벌리기만으로는 이 거대한 전환기를 헤쳐나갈 수 없다.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 새로운 삼성을 함께 만들어 가자”며 ‘뉴 삼성’ 구축을 재차 강조한 바 있다.
여기에 ‘부사장, 전무’로 나뉘던 임원 직급을 ‘부사장’으로 전격 통합해 임원 직급 단계도 줄였다. 젊은 경영진을 조기에 육성하기 위해 30대 임원, 40대 최고 경영자(CEO) 등이 나올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삼성전자는 사내 인트라넷에 직급 및 사번 표기도 삭제하고 승격 발표도 폐지했다. 여기에 상호 높임말 사용을 공식화하기도 했다. 앞서 삼성전자는 2017년 직급단계를 기존 7단계에서 4단계로 단순화하면서 직원들 간 호칭도 ‘프로’ 등으로 통일했지만 상호 존댓말 쓰기를 시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 쿠팡, 배달의민족) 등 IT 기업 같은 수평적 조직문화를 안착시키겠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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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바이스솔루션(DS)글로벌 채용 그룹장인 김희승 상무는 지난 23일 성균관대 제1공학관에서 개최한 ‘T&C(Tech&Career) 포럼’에서 “삼성전자를 최고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사람이 모이는 기업으로 만들 것”이라며 “일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도록 패러다임 바꾸고 있다”고 누차 강조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조만간 뉴삼성을 위한 비전을 보다 구체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병철 선대회장의 ‘인재 제일’ 창업이념을 핵심 가치로 삼아 인재 육성과 조직 성장을 위한 인사 혁신을 이어갈 것이라는 예상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 입장에서는 구글, 애플, TSMC 등 세계 유수 기업과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조직문화 변화, 조직문화 혁신이 없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며 “이 부회장이 본격적으로 경영 행보에 나선 만큼 글로벌 1등 기업다운 혁신 문화 심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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