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누가 코로나19 백신개발에 찬물을 끼얹는가

지원은 못할망정 코로나19 백신업체 발목잡아
통신비 2만원 지급대신 독감백신 무료접종 확대검토
무료접종 확대하면 백신업계 이익 크게 줄어
코로나19 백신 개발 지원은 커녕 발목만 잡아
무료접종 백신가 8790원 vs. 민간 공급가 1만5천원
  • 등록 2020-09-17 오후 2:57:35

    수정 2020-09-17 오후 9:39:49

[이데일리 류성 기자] 정부와 여당이 코로나19 장기화 상황에서 추진하고 있는 국민 1인당 통신비 2만원 지원 정책이 엉뚱하게도 국내 백신업계를 초긴장시키는 사태로 번지고 있다.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하는 야당에서 4차 추경에 편성된 통신비 2만원 지원 대신 전국민 무료 독감백신 접종을 주장하고, 정부여당이 이를 추경안 심의시 검토할수 있다고 해서다. 애시당초 기업의 생존과 안위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정치권에 제 목소리 내는 것은 꿈도 못꾸는 ‘병’의 처지인 국내 백신업계는 그야말로 좌불안석이다.

현재 정부가 무료 접종을 위해 백신업체들로부터 확보한 독감백신은 1900만명 분이다. 무료 대상이 아닌 유료 백신 접종 대상자는 1100만명 가량으로 추산된다. 만약 여야 합의로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 독감백신 정책이 현실화되면 유료 접종자인 1100만명이 수혜자가 될 전망이다.

겉으로 보기에 정부가 독감백신 구매수량을 늘리면 백신업체들은 판매량이 늘어나는 호재로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정부가 백신 구매량을 늘릴수록 업체들의 이익은 쪼그라드는 구조다.

국내 백신업계가 전국민 무료 독감백신 정책 추진에 당황하는 배경에는 기형적인 정부의 독감백신 입찰제도가 있다. 이번에 정부가 4가 독감백신 납품가격으로 확정한 금액은 8790원이다. 반면 같은 제품이면서도 민간에서 판매되는 가격은 1만5000원이다. 독감백신의 시장가와 정부 입찰가 간의 차이가 거의 2배 가까이 나는 셈이다.

정부의 백신 입찰가격에 대해 올해 제약업계는 “4가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투자한 연구비와 시설투자비를 감안하면 정부의 입찰가격이 지나치게 낮다”면서 “최소 1만2000원에서 1만3000원 정도는 돼야 적정 마진이 보장된다”고 주장했으나 정부는 이를 철저히 묵살했다.

정부와 업체가 판단하는 적정한 백신 가격에 대한 차이가 크다 보니 올해 정부의 백신입찰은 4차례나 유찰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실제 미국등 선진 시장에서도 독감백신을 정부가 입찰할때는 시장 거래가격의 80~90% 수준으로 책정하는 게 관례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이번 독감백신 전국민 무료접종 이슈는 오롯하게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집중해도 성공여부를 장담할수 없는 국내 백신업체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는 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정부에 4가 독감백신을 납품하는 대표적인 백신업체는 GC녹십자, SK바이오사이언스 등이다. 세계 백신시장에서도 강자로 손꼽히는 이들은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전념을 다하고 있는 국가대표 백신 전문업체들이기도 하다.

미국, 영국 등에서는 코로나19 백신개발 업체들에 수조원씩 입도선매식으로 연구개발 및 임상시험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지원을 눈꼬리만큼 하면서 전국민 무료 독감백신 접종이라는 소모적인 논쟁으로 이들 업체의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찬물을 끼엊는 형국이어서 대조적인 모습이다. 현재 우리나라 업체들의 백신개발은 글로벌 제약사에 비해 뒤쳐져 있는 실정이다.

코로나19에서 비롯된 전국민 무료 독감백신 정책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은 아무런 실익도, 실현성도 없는 전국민 독감 무료백신 정책같은 논란보다 어떻게 하면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전염병 백신강국’으로 도약할지에 국력을 결집해야 할 시점이다. 국민의 생존을 좌우하는 대규모 전염병에 대한 백신 주권을 확보하지 못하면 그야말로 ‘식민지’ 국민과 다름아닌 시대가 오고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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