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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덫’에 빠졌다. 현재 경제 상황 및 지표 등을 고려해 독립적으로 통화정책을 결정해도 정치적인 해석에서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 조성되고 있어서다.
지난 14일 미국 장단기(10년물-2년물) 국채 금리가 역전되면서 주가가 폭락하는 등 경기침체 전조 현상이 아니냐는 우려가 시장에 확산됐다. 동시에 내년 재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추가 금리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 경기침체가 현실화될 경우엔 모두 연준 탓이라는 논리를 펼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파월 의장 입장에선 정말로 경제가 악화됐을 때 모든 비난의 화살을 감내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 소위 ‘독박’을 쓸 수 있다는 얘기다. 그가 오는 23일 잭슨홀 미팅에서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해 어떻게 진단하고, 또 어떤 발언을 내놓을 것인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 경기 우려때마다 “연준탓”…파월 책임론 조장
연준 이사회는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기존 2.25~2.50%에서 2.00~2.25%로 0.25%포인트 인하했다. 연준이 금리를 내린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였던 2008년 12월 이후 10년 7개월 만이었다.
미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1%를 기록했다. 1분기 3.1%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예상치를 웃돌았다. 아울러 물가가 목표치인 2%를 밑돌고 있기는 하지만, 미국 고용시장은 현재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다. 경기지표만 놓고 보면 되레 금리인상을 논해야 할 정도다.
파월 의장 역시 반대 의견을 의식한 듯 지난달 금리인하가 ‘보험적’ 성격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아울러 다소 모호하지만 “중간사이클 조정(mid-cycle adjustment)”이라는 진단도 내놨다. 추가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기조적으로 통화완화 사이클에 진입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국 상황이 좋더라도 세계 경제와의 연계성이 강화된 만큼, 미중 무역전쟁, 중국·유럽의 경기둔화 등 글로벌 리스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인하 요구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는 점이다. 재선을 앞두고 미국 경제를 고조시켜 승리를 거두겠다는 복안인 만큼 더욱 노골적이다. 특히 자신이 벌인 무역갈등은 외면한 채, 경제가 조금만 나빠져도 모두 연준 탓으로 돌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무역전쟁이 발발 이후 경제지표가 나빠지거나 경제 우려가 심화될 때마다 연준에 금리인하를 주문해 왔다. 최근에도 주식시장이 폭락했던 지난 14일 트위터를 통해 “중국이 아닌 연준이 문제”라며 추가 금리인하를 압박했다. 앞서 8일에는 “연준의 고금리 정책 때문에 미국 제조 기업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옐런 前의장 “트럼프, 연준 독립성 훼손”
그는 “미국 경제가 잘 작동하는데 있어서 연준이 가장 건설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중앙은행이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 때 경제 성과도 가장 좋다”면서 “(연준이) 정치적 압력에 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옐런 전 의장은 또 “파월 의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의견을 무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의견이 마치 통화정책에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인상을 심어주는 것은 피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이나 발언이 있을 때마다 시장 참여자들은 늘상 정치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추측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월 의장이 데이터에 근거해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통화정책을 결정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인하 요구 때문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연준의 독립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옐런 전 의장은 지난 5일 폴 볼커, 앨런 그린스펀, 벤 버냉키 등 역대 연준 의장들과 함께 월스트리트저널에 연준의 독립성을 요구하는 기고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옐런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의장을 해고할 권한이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는 한편, 경기 침체 우려에 대해서는 “미국 경제는 (위기를) 피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