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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완전한 비핵화 전에는 보상은 없다는 ‘모 아니면 도’(all or nothing) 식의 접근법에서 한발 물러나 판이 깨지지 않게 상황관리를 하면서 ‘검증’ 쪽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협상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지만 그만큼 이번 후속협상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부담감도 커졌다.
로이터통신은 4일(현지시간) 복수의 미 정부 관리를 인용해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기 전 사전협상을 위해 성 김 필리핀 대사가 북한 측과 접촉한 것을 계기로 CVID라는 단어가 국무부 사전에서 사라졌다”고 말했다.
미국의 태세 전환 계기에는 한국의 역할이 컸다는 설명이다. 로이터통신은 “한국정부는 북한이 미국 측의 모든 요구를 한꺼번에 수용하기를 주장하기 보다는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훨씬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트럼프정부를 설득했다”고 전했다.
지난달 한국의 고위관리가 미국정부 관계자를 만든 자리에서 “북한은 CVID를 정권을 취약하게 만드는 일방적 무장 해제라고 보고 있다”며 “CVID에 대한 압박을 하기보다는 양자가 점차 위협을 줄이는 편이 낫다”고 발언했다는 것이다.
CVID는 북한을 ‘악의 축’, ‘범죄정권’ 등으로 규정했던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고안된 북한 비핵화 용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정부는 트럼프정부에 비핵화를 위한 단계적 접근이 더욱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설득했다. 뉴아메리칸안보센터의 패트릭 크로닌 연구원은 “김 위원장이 핵 프로그램 전체를 포기하진 않더라도 주요 프로그램을 해체하는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트럼프정부의 입장 선회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는 것이다. 싱가포르회담 이후 약 한 달이라는 시간은 북한의 협상력만 높였다는 비판이다. 폭스뉴스는 5일 “지금까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어떠한 진전도 없었고 북한은 오히려 핵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시간만 벌었다”며 “북한은 이번에도 협상을 지연시키려고 한다면 폼페이오 장관은 우리(미국)의 인내심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 역시 미국기업연구소의 니콜라스 애버슈타트의 글을 인용해 “(싱가포르회담에서) 북한은 더 이상 쓸모없는 핵 실험장소를 폐기하겠다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약속하지 않았다”며 “싱가포르회담은 북한이 영구적인 핵 능력을 보유하는 길을 열어 놓았다”고 말했다.
CNN 역시 미 국방정보국 관계자의 말을 이용해 “김 국무위원장은 현재로서는 완전한 비핵화 프로그램에 나설 의지가 없다”고 비판했다. CNN은 “싱가포르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에 합의했지만 그 비핵화에 대한 정의는 매우 다르다”며 “한반도 비핵화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이 폼페이오 장관의 과제”라고 지적했다.
폭스뉴스는 폼페이오 장관이 이번 협상에서 반드시 얻어야 할 성과와 마지노선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기도 했다. 폭스뉴스는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탄두의 수·위력·위치, 원자로의 수·위치, 핵개발을 위한 원심분리기와 과학자들이 얼마나 있는지, 북한의 시리아에 대한 원자로 건설과 거래 목록 등을 모두 밝혀야 한다”며 “이런 기본적인 정보조차 내놓지 않는다면 트럼프정부는 즉시 한미 군사훈련을 비롯한 모든 군사적·경제적 제재를 북한에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폭스뉴스는 “폼페이오 장관은 우리(미국)의 인내심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며 “8월 1일이 마지노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