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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국내 기업들도 애플의 ‘해적단(Pirates)’처럼 사내벤처에 대한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보장해야 합니다.”
“국내 스타트업의 자금 조달은 정부 지원금에 집중돼 있습니다. 민간 주도의 자생적인 생태계 활성화에 대한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KDB산업은행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벤처·스타트업 연구를 부쩍 강화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 부문을 자회사로 떼어낼 정도로 업무의 중심을 혁신금융으로 옮기고 있다. 이동걸 회장의 기업 세대교체론과 맞물린 결과다.
“사내벤처 독립적 의사결정 보장해야”
30일 KDB산업은행에 따르면 산은은 4월 조사월보(제761호)를 통해 ‘국내 사내벤처 운영 현황과 시사점’ ‘주요국의 스타트업 지원 방식과 시사점’ 보고서를 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성전자의 ‘C랩’, SK플래닛의 ‘플래닛X’, 현대차의 ‘H스타트업팀’, 신한카드의 ‘아엠벤처스’ 등이 대표적이다. 자동차 외장수리 견적비교 서비스 회사인 ‘카닥’은 다음카카오의 사내벤처에서 분사한 벤처다.
한 연구위원은 “미국은 사내벤처가 독립 분사 후 유망 스타트업으로 발전하고 다시 기존 기업과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일으키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돼 있다”며 “국내 기업도 창업을 원하는 내부 직원은 사업 제안을 통해 독립적인 프로젝트에 전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했다.
산은 내부는 점차 혁신금융 중심으로
서대훈 KDB미래전략연구소 미래전략개발부 전임연구원의 주요국 스타트업 분석도 주목할 만하다. 서 전임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의 5대 IT기업(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IBM·애플)은 2012~2016년 기간 스타트업 420개사에 투자했다. 특히 구글이 독보적(420개사 중 333개사)이다. 미국의 IT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츠 자료를 보면, 올해 1월 기준 구글의 투자를 받은 유니콘 기업은 나이언틱, 우버(차량호출 서비스업체), 만방그룹(트럭호출 서비스업체) 등 22개사다.
서 전임연구원은 “미국과 중국 등 민간투자가 활발한 나라일수록 창업 멘토링과 환경 개선에 초점을 두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스타트업의 투자금 확보 경로에서 정부정책 지원금의 비중이 높고 벤처캐피털(VC)의 비중이 낮아, 민간 자본을 더 유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벤처기업의 자금조달 방법은 정부 지원금이 60.5%로 가장 높았다. 회사채 발행(0.1%)과 엔젤투자(0.1%) 등은 미미했다.
이는 최근 산은 내부의 혁신금융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동걸 회장은 정체에 빠진 우리 경제에 활력이 생기려면 수십개의 유니콘 기업이 나와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게 자금을 원활하게 조달할 수 있게 하는 금융이며, 정책금융기관인 산은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은 한 관계자는 “올해 혁신성장금융본부를 부문(부문장 장병돈 부행장)으로 격상하고 관련 인력과 예산을 확대한 건 혁신금융을 주업무로 하겠다는 이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용어설명 - 유니콘 기업
기업가치가 10억달러(약 1조원)를 넘는 비상장 스타트업을 전설 속의 동물인 유니콘에 비유해 일컫는 말이다. 상장하지 않은 스타트업의 가치가 10억달러를 넘는 것은 유니콘처럼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미국의 우버와 에어비앤비, 중국의 샤오미와 디디추싱 등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