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공정위 갑을관계에 매몰…업계·부처와 마찰도 아쉬워"

홍대식 신임 한국경쟁법학회장 인터뷰
“경제주체와 소통했나…간담회 횟수 중요치 않아”
“온플법 필요하지만 유연해야…시장 역동성 봐야”
“대기업 스스로 바람직한 지배구조 찾도록 유도해야”
  • 등록 2022-03-02 오후 3:21:43

    수정 2022-03-02 오후 9:18:33

[세종=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문재인 정부의 공정경제정책은 갑을(甲乙) 문제에 너무나도 매몰됐습니다. 갑을 문제 등 공정거래정책에만 집중하니 더 핵심적인 경쟁정책은 소외되고 말았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다양한 경제주체와 소통이 크게 부족했던 점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홍대식 신임 한국경쟁법학회장(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지난 1월 한국경쟁법학회장으로 취임한 홍대식 회장(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 정부 공정위 및 관련 정책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한국경쟁법학회는 1988년 설립된 국내 대표적 경쟁법 학술단체로, 권오승·정호열 등 전임 공정거래위원장도 회장을 역임했다. 신임 홍 회장은 법조인(판사) 출신으로 20년 이상 경쟁법을 연구해 온 전문가다.

“갑을관계만 보다 경쟁정책 놓쳐…간담회 횟수 중요치 않아”

먼저 홍 회장은 현 정부의 공정위가 `을`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에 치우쳤던 것을 크게 아쉬워했다. `을`을 보호하기 위한 공정거래정책은 주어진 틀에서 `갑`과의 거래질서를 만들고 배분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치중하니 결국 `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기업끼리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고 기업 경쟁력을 키우는 경쟁정책이 실종됐다는 게 홍 회장의 생각이다.

그는 “공정위가 공정거래정책에만 몰두한 것은 판단이 쉽기 때문”이라며 “기업끼리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드는 작업은 경쟁 분석 등 전문적인 작업이 필요해 공정위만 할 수 있는 영역임에도 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공정위가 차별화할 수 있는 영역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 회장은 공정위가 해운담합 제재와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 진행과정에서 경제주체 및 정부부처와 갈등을 빚은 것도 아쉬워했다. 공정위는 해운담합 사건에서는 해수부·해운업계뿐 아니라 국회와도 마찰을 빚었고, 온플법은 방통위(과기정통부)와 갈등을 결국 해결하지 못해 청와대까지 나섰으나 아직도 법안이 통과되지 못한 상태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달 22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대한항공-아시아나 기업결합 심사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브리핑룸으로 입장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그는 “공정위에서는 `해외에선 다른 정부부처가 이렇게 경쟁당국을 들이받는 일이 없다`고 푸념한다”고 전하면서 “하지만 해외에선 대부분 경제주체는 물론 정부부처와 협의나 조율을 하니 문제가 없었던 것이며, 만약 해외에서도 경쟁당국이 혼자 치고 나갔으면 분명히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최근 토론회에서 ‘업계와 간담회를 30번 이상 하는 등 충분히 소통하고 있다’고 강조하더라”며 “만약 30번 간담회를 했으니 충분히 소통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게 더 큰 문제다. 정작 간담회에 참여한 사업자들은 ‘의견이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온플법 필요 공감하나 유연해야…플랫폼 역동성 고려 필요”

홍 회장은 공정위가 온플법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플랫폼 경제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여러 문제가 공정거래법 및 대규모유통업법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만큼 입법 필요성은 공감하나 이미 고정된 틀이 있는 제조업과 같은 규제를 플랫폼에 적용하는 것은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플랫폼 산업은 시시각각 변하는 산업인데 못하는 부분과 해야 할 부분을 정부가 세세하게 강제하면 창의적인 것이 나올 수가 없다”며 “전통적인 산업처럼 규제하는 방식이 플랫폼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 규제 강도를 올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고 합리화·유연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온플법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 네이버·카카오 등 주요 IT기업과 얼마나 대등하게 대화를 했는지도 되물었다.

홍 회장은 “10여년 전 이통3사가 자사 무선인터넷(네이트·매직엔 등) 콘텐츠사업자에 대한 수익 배분을 제대로 하지 않아 이를 강제하는 조항을 전기통신사업법 50조에 넣었다”며 “하지만 이후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모두 앱마켓을 이용하게 됐고 결국 2~3년에 걸쳐 힘들게 만든 법은 쓸모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급변하는 플랫폼 시장에서 세세한 법을 통한 규제는 효과가 없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차기 정부 공정위는 디지털 대전환에 따른 세계 경제질서 재편 상황에서 공정거래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여러 변화에 적응하는 유연한 모습이 필요하다”며 “시장의 역동적인 측면까지 포괄할 수 있는 경쟁정책의 새 패러다임을 정립해 전향적인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기업 스스로 바람직한 지배구조 찾도록 유도해야”

홍 회장은 차기 정부에서는 대기업 규제정책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간 바람직한 지배구조로 유도해왔던 지주회사 체제 외에 다른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 공정위와 기재부도 과거 지주회사 전환 유도를 위해 도입된 ‘지주회사 주식양도세 과세특례법’ 연장에 힘을 싣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안은 지난해 말 일몰 예정이었으나 국회가 2년을 연장했다.

홍대식 신임 한국경쟁법학회장(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그는 “현행 대기업 정책은 경영권 승계를 하지 않거나, 100% 자회사 형태로 운영하는 등 새로운 지배 구조 모델을 보여주는 신흥 대규모 기업집단에도 같은 규제를 적용한다”며 “대기업 정책이 단순한 규제에 머무르지 말고 스스로 바람직한 지배구조를 찾아가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SG 시대에 접어든 만큼 지배구조의 타당성은 시장에서 평가받도록 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끝으로 홍 회장은 2년 임기 목표로 “디지털 대전환에 따른 경쟁법과 다양한 학문적 주제를 설정해 논의의 장과 연구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새 정부의 경쟁정책 패러다임 정립을 위한 방향과 대안이 학술적으로 논의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회 및 단체와 연계한 정책 세미나도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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