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의협)가 전면 휴진을 선언한 18일, 전국 병·의원에서는 환자들이 혼란에 빠졌다. 아픈 자녀와 손주를 데리고 소아과 ‘오픈런’에 나선 이들은 굳게 닫힌 병원 앞에서 허탈하게 발길을 돌렸고, 주요 대학 병원에 다니는 중증 환자들은 파업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이들은 병이 재발하는 것은 아닌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부닥치는 것은 아닌지 장담할 수 없다며 의사들의 복귀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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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9시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A’ 소아청소년과 의원을 찾은 김모(75)씨는 문 앞에 붙은 휴진 안내문을 보자마자 “나쁜 놈들”이라며 역정을 냈다. 몸살로 힘들어하는 손자 이모(11)군을 데리고 급하게 동네 병원을 찾았지만 벌써 세 번째 헛걸음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 동네 소아과, 이비인후과 다 들렸는데 열린 곳이 없다”며 “의사들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분통을 터뜨렸고, 옆에 있던 이 군은 연신 “추워요”라며 할머니의 손을 붙잡았다.
밤사이 열이 39도까지 오른 손자 한모(6)군과 함께 급히 ‘A’ 의원을 방문한 강모(65)씨도 당혹감과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강씨는 “의사 선생님들 모두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신 것 아니냐”고 반문하며 “환자를 돌본다는 사명감보다는 본인의 수입이 먼저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서초구 인근의 다른 소아과는 문을 열였다고 하니 그쪽으로 가봐야겠다”며 “거긴 또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라고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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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휴진에는 1차 의료기관인 동네 의원뿐 아니라 주요 대학병원의 일부 교수들도 참여했다. 다행히 휴진에 참여하지 않은 교수들이 외래 진료 등에 나서 큰 혼란은 없었지만, 환자와 그 가족들은 향후 휴진 움직임이 확산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특히 하루아침에 증상이 악화할 수 있는 중증 환자들의 걱정은 더 컸다.
이날 서울 서대문구의 연대 세브란스병원 혈액 내과 앞에서 만난 정모(59)씨는 “오늘은 진료를 받게 돼 다행이지만 다음 달에는 받을 수 있을까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씨는 혈액암 수술을 마치고 항암치료를 받는 남편을 부축해 이날 아침 인천에서 올라왔다. 정씨는 의료 파업이 본격화되면서 병원에 ‘혈액 내과 진료를 괜찮으냐’고 매일 같이 전화했다고 한다. 남편의 암이 언제 재발할지 모르고 급성이었기 때문이다. 정씨는 “교수님들 힘든 것은 알지만, 가장 피해 보는 것은 우리가 아니겠나”라며 “정말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 전국에서 여기까지 오는 것인데, 그 마지막 끈마저 떨어질까 봐 불안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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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환자 간의 갈등도 첨예해지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성모병원이 속한 가톨릭의대의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오는 20일 전체 교수회의를 열어 구체적인 추가 휴진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고 성균관의대 교수 비대위는 곧 삼성서울병원 교수를 포함한 전체 교수를 대상으로 설문을 배포해 의견을 모을 예정이다. 연세의대 수련병원인 세브란스병원 소속 교수들은 오는 27일부터 정부가 현재 의료대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가시적 조처를 할 때까지 무기한 휴진한다고 발표했다.
반면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정부에 집단 휴진에 참여한 의사들에 대한 처벌을 촉구했다. 이들은 “불법에 가담한 의사들에게 예외 없이 행정 처분과 사법 처리를 실시해야 한다”며 “또한 의료시장을 개방해 외국 의사들도 대학병원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라. 서울대병원은 불법 의대 교수를 파면하고 즉각 대체 교수 모집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일부 맘카페나 지역 카페에서는 휴진에 동참하는 동네 의원을 대상으로 불매 운동에 나서자는 여론이 확산했다. 경기도 의정부 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한 네이버 카페에는 “휴진하는 동네의원은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용하지 말자”는 글이 올라왔다. 이에 “자주 가던 병원이 휴진해 실망스럽다”, “휴진병원 리스트를 공유하자”, “이참에 영원히 휴진하게 만들자”는 댓글과 반응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