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진일보했을까. 박 전 시장의 죽음을 놓고 지지자와 피해자를 지원하는 여성·시민단체의 입장 충돌은 여전하다. 지난달 군대 내에서 성추행 피해를 당한 공군 부사관이 사망하는 등 직장 내 성폭력 문제도 지속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직장 내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 개정뿐 아니라 개인이 아닌 조직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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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진행된 박 전 시장의 1주기 추모식에는 부인 강난희씨와 딸 박다인씨가 참석했다. 조계사 천도재에 이어 10일부터 11일까지 창녕 묘역 시민참배로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유족만 참석하는 소규모 추모제로 전환했다.
조촐하게 열린 추모식이었지만, 박 전 시장의 지지자들은 행사에 참석해 애도를 표했다. 이들은 유족을 향해 “건강하세요”, “힘내세요”, “우리 함께 합시다“라고 외치기도 했다.
또 여전히 성추행 의혹에 대해 확실하게 밝혀진 사실이 없다며 진실 규명을 촉구하기도 했다. 박 전 시장의 지지자 중 한 명으로 이날 추모제 생중계를 진행한 유튜버 손유재(50)씨는 “성추행을 하지 않았는데 박 시장이 억울하게 부당한 일을 겪었다고 본다”며 “확실하게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사실을 밝혀야한다”고 말했다.
이날 추모식을 촬영하는 보수 유튜버와 박 전 시장 지지자의 갈등도 있었다. 한 우파 성향 유튜버가 “성추행을 해놓고 안 했다고 한다”고 말하는 등 고인을 비방하며 추모제를 생중계하자 박 전 시장의 지지자인 50대 남성이 “여기서까지 이러지 말라”며 촬영을 제지해 잠시 설전이 오갔다.
한편,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전날 공동성명을 통해 “여전히 피해자의 ‘일상으로의 복귀’는 요원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 “수사기관이 ‘공소권 없음’을 핑계로 지지부진하게 시간을 끄는 동안 피해자와 변호인, 지원단체에 대한 공격은 나날이 심해졌다”며 “가해자 사망 후 또다시 성폭력 가해에 이용된 권력을 두둔하며 피해자를 의심하고 비난하는 사회의 일면을 목격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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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 시장이 성추행 혐의로 고소된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크게 변화한 된 것은 오는 13일부터 시행되는 성폭력방지법 일부 개정안이다. 공공기관에서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기관장은 피해자의 명시적 반대가 없는 한 사건을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바로 통보하고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잇단 지방자치단체장의 성폭력 사건으로 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실질적으로 법과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는 구조를 만드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소희 한국여성민우회 소장은 “지금까지 성폭력 사건이 보고되지 않아서 문제가 된 건 아니었다”며 “충분히 알려졌음에도 해결하지 않으려는 내부 분위기와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도가 있지만 작동하지 않은 게 문제였기 때문에 법 개정도 중요하지만 원래 있는 제도가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직장 내 성범죄를 개인이 아닌 조직의 문제로 인식하는 변화와 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소장은 “지금은 성폭력 사건을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여기는 인식 속에서 조직적으로 은폐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며 “기업 여성 임원 비율을 늘리거나 책임자부터 인식을 바꾸는 등 구성원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도록 경영방침 속에 주체적으로 녹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 변호사는 “직장 내 성범죄는 대부분 어린 시절 성 평등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4050세대가 주로 저지르고 있다”며 “가치관, 통념을 바꾸는 인식 개선은 어릴 때부터 관련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인권 의식 등 교육이 이뤄지고 있어 20대를 대상으로 양성평등 인식을 조사하면 40~50대와 차이가 크다”며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은 직장 내에서 평생교육으로 갈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울러 직장 내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사각지대’ 해결도 숙제로 남았다. 신 변호사는 “성희롱 예방, 성평등 인식교육 등을 직장 내에서 필수로 하는데 5인 미만 직장은 예외로 교육이 부재하다”며 “5인 미만 직장이라고 해서 직장 내 성폭력이 없는 건 아니므로 사각지대를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