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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오후 부산역 앞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기사 김병국(63)씨는 지지 후보와 정당과 관련한 물음에 가만히 “함 바까야제”라고 되풀이했다.
그는 과묵한 경상도 사나이 전형으로 대부분 질문에 단답형으로 일관했다. 그의 얘기를 종합하면 2004년 이후 세 차례 지방선거에서 모두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에 표를 던졌지만, 하나같이 사표로 분류되는 아픔을 겪었다. 오 전 장관은 2004년 열린우리당 간판으로 처음 부산시장 선거에 나섰다가 떨어졌고 2006년, 2014년에도 낙선했다. 빙과류를 파는 사업을 하다 IMF 위기 때 손을 털고 운전대를 잡은 지 20년째라는 김씨는 “이번에는 오거돈이가 될 끼야”라고 호통을 치듯 목소리를 높였다.
4년 만에 재대결…오거돈, 서병수에 설욕하나
택시에서 내려 국제시장에서 만난 박선우(66)씨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함 보이 오거돈이가 될 거 같은데 내는 서병수를 찍을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기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한국당이 인기가 없다보이”라며 혀를 찼다. 그는 “그래도 우째 하루 아침에 한국당에서 민주당으로 맘을 디집나”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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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덕분일까. 오 전 장관 개인으로는 3전 4기 만에, 당으로는 23년 만에 부산시장에 바짝 다가간 듯했다. 이날 반나절 동안 기자가 만난 부산시민 열에 세 명은 오 전 장관의 승리를 점쳤고 단 한 명만이 서 시장의 역전가능성을 거론했다. 나머지는 잘 알지 못하거나 관심이 없다고 했다.
7년 전부터 자갈치시장에서 회를 치고 있다는 고모(59)씨는 “정치하는 놈들은 전부 도둑놈들”이라면서도 “그나마 오거돈이가 안 낫겄나”라고 말했다. 그는 “새누리당 놈들 알고보니까 서병수 앞전에 누꼬. 허남식이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왔지만 한통속 아이가”라고 했다. 부산 해운대 초고층 아파트 ‘엘시티’의 사업 비리와 관련해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허남식 전 부산시장의 무죄가 대법원으로부터 확정된 것을 꼬집은 것이다.
아동복을 파는 이모(48)씨는 “부산하면 한나라당(현 한국당)인데 지금은 거의 문재인 형님 쪽으로 마이 돌아섰다. 맘이 마이 떠나가지고”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고씨 역시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한국당 후보에 투표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실제로 지난해 5월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에서 38.7%의 득표율로 홍준표 한국당 대표(31.98%)를 앞섰다.
‘드루킹 사건’에 시큰둥…선거 열기도 미적지근
정치권에서는 이번 지방선거의 변수로 ‘드루킹 사건’과 남북정상회담 등 대형 이슈에 표심이 얼마나 움직이느냐를 꼽고 있다. 하지만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은 부산시민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국민을 바보로 아느냐”며 “야당도 댓글부대를 운영할 텐데 모르는체하는 게 괘씸하다”는 시민도 있었다. 익명을 요청한 30대 회사원 강모씨는 “솔직한 이야기로 꼬투리 잡을라카는거고 안 잡힐 사람 어딧노”라고 발끈하기도 했다.
평창동계올림픽과 남북정상회담 등 국제적 관심거리에 묻힌 나머지 선거열기를 느끼지 못한다는 부산시민도 적잖았다. 중구 신창동 국제시장의 한 먹자골목에서 들어간 한 식당 종업원은 “부산시장이예? 아직 멀었다아인기예. 선거하문 요는 함 와보는데 아직 와보도 않코 모르겠스예”라며 낙곱새(낙지·곱창·새우)볶음을 조리했다. 젊은 층에서도 오 전 시장은 서 시장보다 우세했다. 영도구에 사는 1년차 간호사 송모(28·여)씨는 자갈치시장 앞 지하상가에서 장사를 하는 모친을 도우러 가는 길 기자와 만나 “서 시장이 집권한 지난 4년간 부산 경제가 발전하기는커녕 뒷걸음질쳤다”며 “서면 말고는 지하상가는 싸그리 죽어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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