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2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보여주기 위해서 다들 정말 열심히 했어요. 이같은 근성으로 ‘노머니 노아트’에 출연했던 작가들은 아마 죽을 때까지 작가로 살아남을 겁니다. 앞으로도 많은 응원 바랍니다.”(이사라 작가)
거침없이 캔버스를 찢는 드로잉 쇼, 펀치·용접·불쇼까지. 매회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KBS TV프로그램 ‘노머니 노아트’에 출연했던 작가들이 다시 뭉쳤다. 16일부터 9월 16일까지 서울 중구 통일로 KG타워 아트스페이스선에서 여는 ‘서른두개의 에필로그’전에서다. 예술을 통해 나를 보여준다는 행위가 어떤 것인지를 작품과 퍼포먼스로 보여준 32명 작가의 작품을 선보인다. 곽재선문화재단과 열매컴퍼니가 함께 마련한 전시는 수익금 일부를 청년작가 발굴·지원을 위해 사용한다.
16일 아트스페이스선에서 열린 개막식에서 이상원 작가는 “곰브리치가 쓴 저서 ‘더 스토리 오브 아트’에 ‘예술이란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예술가들이 있을 뿐이다’라는 유명한 문구가 나온다”며 “지금 시대의 작가들 또한 자유시장경제 시스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대를 더 통찰하면서 열심히 고민하고 작업해 나가야 할 것 같다”고 소회를 전했다.
| 곽재선(두번째줄 오른쪽에서 다섯번째) 곽재선문화재단 이사장과 KBS 아트 버라이어티쇼 ‘노머니 노아트’에 출연했던 주요 작가들이 16일 서울 중구 KG타워 아트스페이스선에서 열린 ‘서른두개의 에필로그’전 개막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곽재선문화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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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인32색 작품 한자리에
지난 5월 종영한 ‘노머니 노아트’는 매회 색다른 매력을 가진 미술 작가들이 등장해 작품을 소개하고, 선택된 하나의 작품을 최종 경매에 부치는 아트 버라이어티쇼다. “돈이 되지 않으면 예술이 아니다”란 파격적인 콘셉트를 내세우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회 우승작가인 이사라 작가는 검게 뒤덮인 캔버스를 거침없이 찢는 퍼포먼스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아트 컬렉터들의 선택을 받은 이 작가의 작품은 최종 2100만원에 낙찰되며 다시 한번 화제가 됐다.
방송이 끝난 이후에도 저마다의 작업을 해나가는 작가들의 이야기는 대중의 마음에 파고들어 여운을 남겼다. 이번 전시에서는 긴장과 설렘 탓에 방송에서 미처 전하지 못했던 작가들의 마음을 전달하고 서른 두 개의 에필로그를 완성한다. 방송을 통해 선보였던 원작을 비롯해 20분 라이브드로잉 작품,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판타지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이상원 작가의 ‘더 파노라믹’이 시원한 바닷가 풍경으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 작가는 누군가와 함께했던 추억을 상기할 수 있도록 해변, 공원 등 휴양지의 모습을 캔버스에 담고 있다. 보는 사람들이 좋은 상상과 기억을 채워 넣을 수 있도록 사람과 사물을 최대한 단순하게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현시대의 모순을 표현한 류노아의 ‘머니몬스터’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색을 배경으로 커다랗게 입을 벌린 채 몬스터가 서 있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몬스터의 입은 명품브랜드 루이비통 가방의 원단으로 만들어졌다. 손에는 화려한 팔찌와 반지를 장착했다. 류 작가는 자본주의와 경쟁의 과도한 강조로 실체가 흐려진 현대사회를 비판하며 작품 속에 몬스터를 등장시켰다.
| 이사라 작가의 ‘원더랜드’(사진=곽재선문화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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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색의 색감으로 순수했던 동심의 세계를 소환하는 작품들도 있다. 어린 시절 함께 지냈던 인형들에서 영감을 받은 이사라 작가의 ‘원더랜드’와 베리킴의 ‘베리랜드’다. ‘원더랜드’는 반짝이는 눈망울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소녀를 통해 현대인의 지친 마음에 위로와 용기를 전한다. 베리킴은 관심 밖으로 사라져 버리는 옷·신발·시계·전화기·가방 등의 사물에 눈·코·입·팔·다리를 달아주고 패션을 입혀 새로운 캐릭터로 탄생시켰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로 유명해진 정은혜 작가의 ‘은혜씨가 사랑하는 것들’도 전시장에 나왔다.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정 작가는 이미 4000명이 넘는 인물의 캐리커처를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그리며 성장 중이다. 태우 작가의 ‘와유산수도: 화려강산’은 전통산수화 중 ‘와유사상: 누워서 유람하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이외에도 자신만의 파라다이스를 그린 아이라최의 ‘붉은땅의 오아시스’,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연둣빛고등어의 ‘꽃구경 가는날’,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가 오묘하게 뒤섞인 아방의 ‘드라이브2’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문화나눔 확산에 앞장서는 곽재선문화재단은 청년작가들에게 꿈을 이룰 기회를 열어주기 위해 청년작가 발굴 및 지원프로젝트도 준비 중이다. 재단 이사장이자 설립자인 곽재선 KG그룹 회장은 “작품이 예술가의 수장고에만 있다면 그저 하나의 그림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며 “전시회를 통해 많은 사람이 함께 보고 기쁨을 누리고, 힐링을 선사하면서 작품은 생명력을 얻게 된다. 일상에 지친 많은 분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편안한 마음으로 좋은 작품들을 만나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 이상원 작가의 ‘더 파노라믹’(사진=곽재선문화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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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노아 작가의 ‘머니몬스터’(사진=곽재선문화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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