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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국민 백신 우선주의로 인해 2분기 물량부터 도입이 지연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일(현지시간) 진행된 화상 정상회담에서 멕시코의 백신 지원 요청을 거절했다. 영국 정부는 자국민을 위해 아일랜드에 백신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유럽연합(EU)은 지역 내에서 생산된 백신에 대해 사실상 수출 제한 조치를 내렸다.
원료 공급도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다. 바이러스 벡터 방식 백신과 단백질 재조합 방식 백신에는 핵심 원료인 배지(세포 먹이)와 레진(불순물 정제액)이 반드시 필요한데, 원료 의약품 공급업체들이 집중돼 있는 미국·유럽 국가들이 잠정적으로 원료 수출을 막고 있다. 단백질 재조합 백신을 생산하는 노바백스는 EU와의 백신 공급계약 체결까지 연기했다. 바이러스 벡터 백신인 아스트라제네카와 얀센 백신 제조에 쓰이는 배지와 레진의 수급도 원활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스푸트니크V는 우리나라에서 대규모로 위탁생산되고 있어 상대적으로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코러스의 모회사 지엘라파는 지난해 러시아국부펀드(RDIF)와 연간 1억5000만 도즈(1회 접종분) 생산계획을 맺고 같은 해 12월부터 스푸트니크V 백신을 생산해 해외에 공급하고 있다. RDIF는 지난달에도 국내에서 해당 백신을 5억 도즈를 추가 생산하기 위해 지엘라파, 바이넥스(053030), 이수앱지스(086890) 공장 등을 방문했다. 이수앱지스는 러시아로부터 기술이전을 받는 등 생산 착수에 들어갔다. 기술이전을 받으면 업체가 생산 물량을 자체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비상 계획 차원에서 러시아 백신의 국내 도입을 고려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교수는 “백신 수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국내에 러시아 백신이나 중국 백신 도입을 고려해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면서 “러시아 스푸트니크V 백신은 임상 3상을 통해 91.6%의 예방효능과 안전성을 입증했지만 중국 시노팜 백신은 그렇지 못해 상대적으로 러시아 백신이 더 믿을만 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스푸트니크V는 전달체 아데노바이러스 26형과 5형을 사용해 효능을 높였다”면서도 “시노팜 백신은 불활성화 방식으로 만드는 백신이라 효능은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기모란 국립암센터대학원 예방의학과 교수 역시 공급 측면에서 스푸트니크V 백신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기 교수는 “스푸트니크V 백신은 국제적인 의학전문지를 통해 객관적인 임상결과를 내놨고 국내에서 위탁생산하고 있어 쉽게 검증할 수 있다”면서 “아스트라제네카와 같은 방식의 백신이어서 안전성 평가를 통과하기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러시아 백신 도입이 국민들의 접종률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스푸트니크V를 비롯해 러시아 백신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이나 유럽의약품청(EMA)에서 허가를 받은 사례가 없어 신뢰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고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교수는 “논문을 통해 임상 3상 결과가 나온 것 외에는 효능이나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면서 “조금 늦더라도 화이자나 모더나, 노바백스 등 효능과 안전성이 입증된 검증된 백신을 다량 확보해 국민들이 같은 백신을 맞게 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국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소규모라도 국내 임상을 진행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김 교수는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급하니까 국내에서 임상을 진행하지 않고 바로 접종에 들어갔지만, 만약 러시아 백신을 도입한다면 국내에서 소규모라도 임상시험을 해 안전성을 검증해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