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리서치 회사 ‘발라트로(Balatro Ltd.)’의 최고 경영자이자 BBC, 스카이 뉴스, 블룸버그 등에서 은행 관련 이슈에 대한 해설자로 활동하고 있는 크리스 스키너는 최근 펴낸 ‘디지털 뱅크, 은행의 종말을 고하다’에서 단순한 물리적 네트워크의 우위가 은행 영업력의 우위로 직결되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핀테크(Fintech)의 급속한 발전으로 금융과 비금융의 경계가 모호해진 상황에서 현재와 같은 성격의 오프라인 지점은 분명히 줄어들고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글로벌 금융패러다임의 전환 ‘인터넷 전문은행’
최근 금융업을 둘러싼 가장 큰 화두는 인터넷 전문은행이다. 사실 국내에서 인터넷 전문은행에 대한 논의는 2000년 초반부터 시작됐지만 은행 설립과 관련된 금산분리와 여러 가지 규제와 쟁점 등을 해결하지 못해 번번히 좌절됐다.
하지만 글로벌 핀테크 시장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 문제는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됐다. 문제는 해외의 경우 글로벌 대형 IT기업뿐만 아니라 핀테크 스타트업 등 비금융회사의 금융업 진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각종 규제로 글로벌 핀테크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 글로벌 지급결제 부문에서 페이팔(PayPal)은 강력한 은행의 경쟁자로 등장했으며 렌딩클럽(Lending Club)과 같은 P2P대출 업체들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알리바바는 대출뿐 아니라 수신업무까지 영위하고 있어 금융과 비금융의 경계마저 모호해져 버렸다.
김미애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해외에서는 핀테크 산업과 관련된 금산분리는 거의 폐지돼 산업자본의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뿐만 아니라 금융자본의 핀테크 업체 소유까지도 허용된 상황”이라며 “금산분리 규제를 그대로 유지하거나 부분적으로 완화하는 선에 그치는 건 글로벌경쟁에서 큰 도움이 되지 못하므로 과감한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넷 전문은행, ‘Unique·Popular·Mobile’ 3박자 갖춰야
1995년 세계 최초의 인터넷 전문은행이 설립된 미국에서는 2000년 초반까지 30개 내외의 인터넷 전문은행이 설립됐지만 낮은 브랜드 인지도와 기술력으로 고객 확보에 실패하면서 문을 닫는 사례가 빈번했다. 초기 시스템 구축을 위한 고정비용과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는 임계수준의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마케팅 비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해외 인터넷 전문은행의 과거 사례를 참고할 때 한국형 인터넷 전문은행의 발전 키워드는 크게 3가지로 압축된다. 즉 유일한 기술로 대중적이면서도 모바일 환경에 적합한(unique·popular·mobile)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전자상거래 업체인 라쿠텐(Rakuten)의 자회사 라쿠텐 뱅크는 전자상거래, 해외송금, 전자화폐 등의 지급결제업무에 특화됐다. 일본 최대 인터넷 전문은행인 SBI Sumishin Net Bank는 SBI Securities(계열 증권사)와 합작을 통해 출시한 복합상품(Hybrid Deposit)과 SMTB(Sumitomo Mitsui Trust Bank)와 연계한 주택담보대출의 성공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BNP파리바는 ‘헬로뱅크(Hello Bank)’라는 모바일 전용 은행을 선보이며 ‘모바일로 태어났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모든 서비스를 모바일 환경에서 제공하고 있다.
글로벌 핀테크 시장 성장률이 가장 높은 영국의 금융그룹 바클레이즈(Barclays)도 주목할만 하다. 바클레이즈은행이 2012년에 출시한 ‘핑잇(Pingit)’ 모바일 앱은 상대방 전화번호만으로 간편하게 무료 송금할 수 있는 앱으로, 지난해 6월말 기준 총 가입자수가 300만명을 돌파했으며 누적 기준으로 1조원 이상 송금처리됐다. 단순하고 편리한 모바일 환경을 제공해 이용자 편의를 제고했다는 측면이 강하게 작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클레이즈는 이외에도 △쇼핑 △선물보내기 △기부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강서진 KB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국내의 경우 인터넷 전문은행에 유리한 ICT기업들이 지급결제시장을 필두로 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황에서 금산분리 규제완화는 금융업 전체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며 “다만, 인터넷 및 모바일 뱅킹의 활성화로 예금, 대출, 송금 등 대부분의 금융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인터넷 전문은행은 차별화된 서비스 제공을 통해 지속가능기업으로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