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삭감 후폭풍 지속…교수는 해외이직·학생연구원은 취업 검토

4대 과학기술원 교수들, 신규채용 기피·연구 조기종료
학생들 조기졸업 압박…A연구실 5명 중 3명 기업으로
개인 대출 알아보는 교수도···"정부 미봉책으로 일관"
  • 등록 2024-01-25 오후 4:37:58

    수정 2024-01-25 오후 6:48:53

[이데일리 강민구 기자] “이미 데리고 있던 학생연구원 5명 중 3명을 내보내면서 인건비를 줄 수 없으니 민간기업에 취업하라고 했습니다. 올해는 해외에서 연구실로 자원한 우수 학생들도 있었지만 뽑을 엄두도 못내고 있습니다.”

국내 4대 과학기술원에 재직 중인 A교수는 최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세계 최상위권 연구 논문을 게재해 이름이 널리 알려져있지만, 역시나 올해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여파를 피해가지는 못했다. 그는 국내 연구여건이 열악해지면서 해외 대학에서 받은 이직 제안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A교수는 “4대 과학기술원(한국과학기술원,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울산과학기술원, 광주과학기술원)에서도 여파가 큰데 정부에서는 대학 총장과 부총장에 압력을 가하고, 정보 유출자를 쥐잡듯이 잡기만 한다”며 “교수들은 대외적으로는 말을 못한 채 속만 끓이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4대 과학기술원.(사진=한국과학기술원,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울산과학기술원, 광주과학기술원)
연구실 운영 어려워지자 학생들 조기졸업 고려

정부가 연구개발(R&D) 예산을 전년 대비 약 15%(4조6000억원) 삭감하고, 정부부처 과제별, 기관별로 삭감 내역을 통보하면서 연구현장에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국가가 지원하는 이공계 중점대학인 과학기술원 소속 교수와 학생들까지 동요하는 분위기다. 과학기술원이 수행하던 사업 예산은 올해 최대 80%까지 감액됐고, 전체 예산도 10~20% 가량 줄면서 연구실 운영이 어려워졌다. 정부가 지난해 학생 연구원 지원 규모가 축소되지 않을 것이며 영향을 최소화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실상은 반대인 것이다.

이데일리 취재 결과 4대 과학기술원 교수들은 학생 신규 채용에 소극적이고, 기존 학생들은 조기졸업도 검토하고 있다. B교수는 “학생들이 국가 연구개발 사업을 수행하면서 논문을 제출하고 졸업하는데, 연속 과제가 조기 종료 수준으로 마무리되자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학생들만 타격받는 상황이 됐다”고 털어놨다.

석·박사 과정에 있는 학생들도 이미 채용 한파를 체감하고 있다. 울산과학기술원 대학원총학생회 관계자는 “연구비가 80% 삭감되거나 과제 조기 종료를 강요받은 곳은 여파가 거세고 실질적으로 임금도 삭감됐다”며 “기존에는 명목상 인건비로 책정된 석사 80만원, 박사 110만원 정도보다 조금 더 받았지만, 올해는 80만원 수준도 유지하기 어려운 연구실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과학기술원 대학원총학생회 관계자도 “다음 과제를 수주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고 기존 과제를 수행하기 어렵다보니 연구실 유지를 위해 논문을 급히 내거나 급이 떨어지는 논문을 내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며 “학생 채용이 어려워지면서 담당교수들의 부담이 큰 것 같다”고 밝혔다.

정부 “문제없다”는 말만 되풀이

과기정통부는 올해 R&D 예산 삭감에 따라 현장의 불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여파는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4대 과학기술원의 학생연구원 1만2000명과 박사후연구원 900명 등의 지원 규모는 올해 축소되지 않는다”며 “올해는 신규 과제 선정도 앞당겨지기 때문에 새로운 과제들을 준비할 수 있는데다 일각에서 우려하는 연구 중복 없이 새로 과제에 지원하면 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4대 과학기술원과 협의해 인건비 풀링제 활용을 적극적으로 하라고 주문하고 있다”며 “현장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부처 입장에서는 대통령 장학금 신설 등 이공계를 위한 정책을 오히려 고심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인건비 풀링제와 관련해 4대 과학기술원 소속 교수 및 학생들은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재작년 또는 전년도에 미리 위기상황을 대비해 쌓아놓은 적립금을 쓰겠다는 것으로 1년 정도 버틸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A교수는 “학생 인건비 부담을 위해 개인 대출을 알아보는 동료 교수가 있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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