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아직까지 아무런 반응 없어요. 선거 앞두고 하는 얘기를 어떻게 믿겠어요.”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 M공인 대표는 기자가 부동산 중개업소 안에 들어서기 무섭게 대뜸 손사래부터 쳤다.
지난 11일 오후 서부이촌동 일대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조용히 술렁이고 있었다. 지난해 좌초된 총 사업비 31조원 규모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시 수면 위로 떠올라서다.
| △지방 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후보들이 좌초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을 재차 거론하면서 사업지인 서울 서부이촌동 일대 부동산 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서부이촌동의 한 건물 벽면에 용산역세권 개발 당시 사업 추진을 반대하는 대형 문구가 새겨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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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은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의 발언이었다. 정 의원은 최근 용산 개발과 관련, “덩어리가 커서 소화가 안되고 있는 것인데 단계적·점진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 큰 그림을 갖고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의 용산역세권 개발사업 재추진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이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진하고 있는 ‘맞춤형 관리’ 방안과 상반된 개발 청사진이다.
서울시는 이달 초부터 지역 주민들과 협의해 서부이촌동의 도시 관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다. 이 일대 대림·성원·동원아파트 등 고층 아파트 단지를 뺀 시범중산·이촌시범·미도연립과 남쪽 단독주택지의 용도지역제(도시계획에 따라 토지 용도와 사용 방법을 정한 것)를 손 봐 사업성을 높여주고 주민 주도로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느닷없이 두 개의 선택지를 쥐게 된 서부이촌동 주민들의 반응은 의외로 덤덤했다. 성원아파트에 거주하는 박모(65·여)씨는 “선거철에 흔히 나오는 얘기 아니겠냐”며 “지금까지도 동네가 개발 문제로 시끄러웠는데 더이상 들쑤시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상인은 “오세훈 시장은 건설을 할 줄 몰라서 일을 그렇게 망쳤겠나. 사업 무산 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못 믿겠다는 주민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반응은 실패한 투자의 ‘학습 효과’ 때문이다. 7년여를 끌었던 초대형 개발사업이 물거품이 되면서 그간 개발이익을 믿고 집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았다가 빚만 남은 집주인들에게 불신감이 커진 것이다. 정 의원의 ‘개발 재개’ 발언 이후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의 2대 주주인 롯데관광개발 주가가 상한가를 찍는 등 주식시장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것과 대조적이다. 인근 D부동산 관계자는 “예전 같았으면 이런 말이 나오자마자 집주인과 투자자들의 문의가 빗발쳤을 것”이라며 “지금은 문의가 없는 걸 보면 개발 자체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지역의 아파트 거래시장에서도 관망세가 뚜렷하다. 다만 7년 사이 반토막난 집값은 최근 매도 호가(집주인이 부르는 값) 위주로 미세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서부이촌동 아파트의 경우 정상적인 매매 거래가 이뤄지지 않은 채 경매 낙찰가 위주로만 시세가 형성돼 왔다. 서부이촌동 부동산뱅크 관계자는 “대림과 성원아파트 전용면적 59㎡형 매물이 각각 5억원 중반과 후반대에 나와 있다”며 “지난해 말 개발 구역 지정이 해제된 이후 최고 5000만원 정도 오른 가격”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는 개발 기대감 때문이 아닌 전반적인 주택시장의 회복 영향이라는 게 주변 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잠잠했던 시장이 재차 달궈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서부이촌동 S공인 대표는 “확실하지도 않은 개발 얘기가 주민 판단을 흐리고 착각에 빠뜨릴 수 있다. 지금은 주민들도 (개발이 추진되던) 예전 수준의 집값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정상적인 거래가 이뤄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