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시간 좇다 학동 이어 화정동 붕괴참사…“공익제보 있었더라면”

‘학동 참사’ 7개월 만에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
공기 줄이려 무리하게…위험 여전 상존
“건설업계 폐쇄적…사전예방 위한 내부제보 어려워”
피해는 주민들 몫…관리·감독 강화 요구
  • 등록 2022-01-18 오후 5:09:53

    수정 2022-01-18 오후 5:09:53

[이데일리 이용성 기자] “애들 장난감 블록 쌓듯 하루가 다르게 건물이 올라가는 걸 보고 깜짝깜짝 놀라긴 했죠.”

광주에서 20년 넘게 택시를 운전해온 정모(59)씨는 붕괴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정씨는 “이 근처 손님이 많아서 오고 갈 때마다 봤는데 무섭게 (건물이) 올라가 걱정이 되긴 했다”고 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연관된 7개월 전 ‘광주 학동 재개발 철거현장 붕괴사고’에 이어 지난 11일 ‘광주 화정동 신축아파트 붕괴 사고’의 공통 원인으로 부실 작업이 거론되고 있다. 두 사고 모두 공사기간(공기)과 공사비를 줄이기 위해 몰두했던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거듭된 인재를 막기 위해선 불법 다단계 하도급 근절과 적정 공기·공사비 보장은 물론, 건설업계 내 공익제보 활성화가 필요하단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광주 화정동 신축아파트 붕괴사고 현장.(사진=연합뉴스)


시간과 돈에 쫓기다…연이은 참변

지난 11일 오후 3시 47분쯤 광주 서구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신축 공사 현장 39층 옥상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던 중 23층부터 38층까지 외벽과 구조물이 무너졌다. 이 사고로 당시 작업자 6명이 실종됐다가 1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재 나머지 5명에 대한 구조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번 사고는 지난해 6월 철거 건물이 무너지면서 17명의 사상자를 낸 학동 붕괴사고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당시 사고는 무리한 해체 방식과 과도하게 쌓아올린 토사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사고가 발생했다. HDC현산의 하청을 받은 철거업체는 애초 맨 위층부터 하나씩 허물고 내려나갈 계획이었지만, 건물 뒷면을 먼저 철거했다. 이들은 건물 뒤편에 붙어 있던 2층짜리 부속 건물을 해체한 뒤, 거꾸로 1층 외벽부터 제거하기 시작했다. 이후 토사를 쌓아 중장비를 동원해 건물 뒤편 외벽 전체를 철거했다.

철거업체가 해체 방식을 바꾼 이유는 공사 기간 단축을 위해서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한 층씩 해체할 때보다 대형 장비로 옆면을 한꺼번에 뜯어내는 게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이들은 애초 계획보다 약 20일 빨리 목표에 달성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중앙건축물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는 지난해 8월 “아래층부터 일부 해체되면서 성토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고, 결국 건물이 무너졌다”며 “무너지는 과정에서 흙이 1·2층으로 들어가면서 붕괴가 가속됐다”고 분석했다.

이번 화정동 아파트 붕괴 사고도 공사 작업이 졸속으로 이뤄진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건설노조 광주전남지역본부(건설노조)가 공개한 광주 화정아이파크 201동 콘크리트 타설 일지에 따르면 해당 아파트 고층부 건설할 당시인 지난해 11월 23일 35층 바닥면 콘크리트가 타설된 뒤 10일 후 36층 바닥이 타설됐다.

37층 바닥면은 7일 만에 38층 바닥면은 6일 만에 타설됐다. 38층 천장(PIT층 바닥) 또한 8일 만에 타설 공정을 마무리했다. 이후 11일 뒤 39층 바닥을 타설하던 중 붕괴사고가 났다.

콘크리트 양생 기간(경화 작용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콘크리트를 보호하는 작업)을 충분히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건설 작업을 강행해 이 같은 사고 벌어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건설노조는 “무리한 작업 진행에 따른 부실시공과 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 따른 적정 공사비·공사기간이 확보되지 않아 이러한 참사가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돈과 시간에 쫓겨 참변이 일어났다는 얘기다.

광주 화정아이파크 201동 콘크리트 타설 일지.(사진=건설노조 광주전남지역본부 제공)
◇“사전예방 위한 공익제보, 건설 안전사고 막을 법 필요”


‘부실 공사’를 외부에 말하기 어려운 건설업계 문화와 관행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건설업계 분위기와 불법하도급 문제가 걸려있어 알고도 고발하지 못해 사고를 키운단 지적이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사고를 사전에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공익제보”라며 “업자들은 부실하게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지 아닌지 알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데 공익 제보하는 순간 업계에서 매장 당한다”고 말했다.

실제 화정동 붕괴사고 당시 공사 관계자는 부실공사를 알고 건물 기둥에 콘크리트가 벗겨져 있는 사진 등을 촬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똑같은 설계 방식으로 이뤄진 203동에서도 39층 바닥 일부가 무너져 내리는 붕괴사고가 있었지만, 쉬쉬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이 전 교수는 “건설업계가 워낙 폐쇄적이라 ‘불편한 진실’을 알아도 밖에 얘기를 못하니 사전예방이 어렵다”며 “현장을 제일 잘 아는 공사 관계자들이 공익제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사회적인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공사기간 단축을 위한 날림·부실 공사의 피해는 오롯이 지역 주민이 받게 됐다. 실종자 가족들은 일주일 넘게 붕괴 사고 현장에서 숙식하며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인근 상인들의 생업은 아예 멈췄다.

광주시내 고등·특수학교 73곳의 학생들이 모인 광주 고등학교학생의회는 18일 “모든 광주지역 고등학생들은 지난 학동 참사와 화정동 참사를 기억할 것”이라면서 “안전 관련 법령 개정과 사고 예방을 위한 관리·감독 체계의 강화를 국가와 시민에게 요구한다”고 밝혔다.

시민단체 ‘안전사회시민연대’는 전날 서울 용산 HDC현산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의 원인은 건설사의 탐욕과 이를 위해 유지되는 다단계 하청구조와 불법 하도급”라면서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없애고, 건설분야 안전사고 문제 해결을 위한 별도의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6월 10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지역 건물 붕괴 현장에서 국과수와 경찰 등 관계자들이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합동감식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이용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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