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금 더 받으려고?"…도심 50㎞ 속도 제한에 기사도 승객도 '갑갑'

지난달 17일부터 '안전속도 5030' 전국 시행
규정 지켰지만…"택시 운전 느려" 신고에 경찰 출동
취지 공감하지만…야간 운행 때는 속도 놓고 마찰↑
"야간 운행이거나 카메라 단속 없을 때 어기기도"
  • 등록 2021-05-10 오후 4:39:26

    수정 2021-05-10 오후 10:03:54

[이데일리 이소현 이상원 기자] 지난 7일 새벽 2시께 서울 서대문구 한 도로에서 30대 승객이 50대 택시기사와 시비가 붙어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다. 종로3가에서 출발한 택시가 사직터널을 통과해 독립문으로 향하던 중 승객이 “기사가 운전을 너무 느리게 해 일부러 요금을 더 받으려고 한다”고 112에 신고하면서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조사한 결과 택시기사는 도심 구간에서 시속 50㎞ 규정을 비롯해 터널 구간에서도 시속 30㎞에 맞춰 주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택시 주행을 놓고 시비가 붙어 불만을 가진 손님이 택시기사가 ‘자신을 협박한다’고 신고해 출동했었다”며 “정황을 파악하고 승객에 바뀐 규정을 설명한 후 중재했다”고 설명했다.

전국 도로의 제한 속도를 낮추는 ‘안전속도 5030’이 지난달 17일 시행 된 가운데 서울 종로구 종각사거리에 안전속도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국적으로 도심의 차량 제한속도를 낮추는 ‘안전속도 5030’ 제도가 지난달 17일부터 시작해 시행 4주차를 맞았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주행 속도를 놓고 마찰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안전속도 5030은 보행자가 많은 도시지역의 차량 제한속도를 일반도로는 시속 50㎞, 주택가 등 이면도로는 시속 30㎞ 이하로 낮추는 정책이다. 일부 차량 정체 우려가 있었지만 정부는 실제 도입해 보니 큰 영향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실제 이데일리가 이날 오전 10시 50분께 종로구 종로4가에서 택시를 타고 성북구 성북동의 한 음식점까지 시속 50㎞ 제한 속도에 맞춰 움직였을 때 약 13분이 걸렸다. 한 지도 애플리케이션의 예상 도착 시간(12분)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주행 내내 기사의 불평은 끊이지 않았다.

3차선 도로와 이면도로가 혼재된 구간이었는데 주행 내내 뒷차가 빨리 가지 않는다며, 경적을 내거나 추월해 가기 일쑤였다. 이 구간을 주행한 택시기사는 “시속 60㎞에서 10㎞가 줄었는데, 차이가 크다”며 “도로가 뻥 뚫렸는데도 24시간 내내 지켜야 할 때는 발이 묶여 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택시기사들은 그나마 교통량이 많은 주간 운행에는 규정을 지켜 운행할 만 하지만, 도로가 한산한 야간 운행에서는 난감한 상황에 놓이기 일쑤라고 하소연했다. 30년 이상 택시 운전을 한 박모(66)씨는 “최근 시속 30㎞ 제한 구역에서 27~28㎞로 맞춰가고 있었는데 밤 시간대에는 차가 없으니까 승객이 ‘앞차 가는데 빨리 가자’고 속도를 내 달라고 요구했다”며 “단속 카메라가 있는데 속도를 넘게 되면 ‘딱지’가 날아오니 어쩔 수가 없다고 양해를 구했다”고 말했다. 과속단속 카메라에 적발되면 과태료가 일반 도로는 7만원, 30㎞ 구간은 2배로 적용돼 14만원이다.

경기도 하남시 신장동로 하남유치원과 스타필드 어린이집 일대 ‘스쿨존’이 재정비 사업을 마치고 단장돼 있다.(사진=연합뉴스)
또 다른 택시기사 강모(56)씨도 “택시를 타는 목적이 빨리 가는 건데 50㎞를 지켜 운전하면 손님이 좌우를 살피며 빨리 가자고 압박을 준다”며 “야간 운행 중 한가한 도로에서 속도를 안 내면 어떤 손님이 ‘규칙을 잘 지키는 착한 기사’라고 생각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에 야간 운행에는 ‘안전속도 5030’을 무시하고 주행한다는 이들도 있었다. 택시기사 김모(69)씨는 “강남대로, 영동대로 이런 곳은 8차선인데 밤에는 그냥 달린다”며 “현실적으로 차가 없는 곳이나 카메라가 없으면 내달려야 한 명이라도 더 태운다”고 말했다.

어린이 교통안전을 위해 ‘민식이법’이 제정되기도 했고, ‘안전속도 5030’ 정책 취지는 공감하지만, 실제 도로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탁상행정이라는 쓴소리도 나온다. 40년 이상 택시 운전을 한 송모(65)씨는 “학교 주변이나 골목길 등 30㎞ 단속구간은 이해할 수 있지만, 편도 3~4차선 도로가 뚫려 있으면 순리대로 가야지 야간운행 때 50㎞ 제한은 오히려 교통체증을 일으킨다”며 “장소별, 시간대별로 더욱 세심한 규제 적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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