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제끼고 중동 비행기 뜬다…아시아노선 '오일머니' 장악

저렴한 항공편 무기로 중동항공사 공격적 공세
루프트한자·에어프랑스 등 아시아 직항편 축소
FT "유럽항공사들 중동항공사와 경쟁서 굴복"
  • 등록 2024-04-03 오후 3:40:14

    수정 2024-04-03 오후 7:11:48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오일머니’로 중무장한 중동항공사들이 저렴한 항공권과 환승 연계 상품을 앞세운 공세에 유럽항공사들이 아시아행 노선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이후 항공 수요가 급증한 가운데 알뜰족 여행객들이 아시아 노선에서 유럽항공사보다 중동항공사를 더 많이 이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2023 두바이 에어쇼에서 에미레이트항공 여객기가 보이고 있다.(사진=AFP)
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즈(FT)는 글로벌 항공 분석 전문 업체 시리움(Cirium)의 자료를 인용해 작년 유럽~아시아 노선 유럽항공사들의 공급석은 2019년 대비 26% 감소한 2200만석에 그쳤다고 밝혔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고 14년 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활동 재개가 늦어지며, 유럽과 아시아 간 직항이 끊기는 등 여행이 복잡해진 탓이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러시아 영공으로 비행이 금지되면서 동아시아 지역으로 가는 비행시간이 더 길어진 점도 노선 감축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FT는 “유럽항공사들이 승객들에게 더 저렴한 항공요금을 제공하고 허브공항을 경유하도록한 국영 중동항공사와의 치열한 경쟁에서 굴복했다”고 평가했다.

실제 에미레이트항공과 카타르항공, 에티하드 등 중동항공사들은 정부 소유로, 유류세 등을 따로 부과하지 않아 다른 국적 항공사보다 가격을 30% 이상 낮출 여력이 있다. 또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지리적 이점을 살려 관광업 육성에 힘쓰고 있다.

두바이행 에미레이트 항공의 에어버스 A380 여객기가 뉴욕 JFK 국제공항에서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AFP)
중동항공사들의 공격적인 영업에 루프트한자와 에어프랑스-KLM 등 유럽 주요 항공사들은 타격을 입었다. 가격 경쟁력을 잃어 아시아 주요 국가로 가는 직항 항공편을 줄이게 된 것이다.

벤 스미스 에어프랑스-KLM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동남아시아로 가는 서비스는 거의 없다”며 “중동항공사에 모든 트래픽을 뺏겼고, 현재 우리의 재정상황과 비용구조, 중동항공사들이 가진 이점을 생각했을 때 이를 되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카스텐 포어 루프트한자 CEO도 “독일항공사는 아시아 14개 도시로 직항편을 운항했지만, 현재는 싱가포르와 방콕으로만 운항하고 있다”며 “사실상 아시아로의 연결이 끊긴 셈으로 이제 모두 정부 소유의 허브(중동항공사)를 통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럽항공사들은 중동항공사에 적용되지 않는 유럽연합(EU)의 탄소배출 감축을 위해 강해지고 있는 환경규정도 경쟁력 약화의 원인으로 꼽는다. 유럽항공사들은 EU 규정에 따라 유럽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환승 구간에서 제트연료를 더 비싼 청정 대체 연료와 혼합해 사용해야 한다.

또 항공기 유지·보수를 포함한 인건비에서도 열세다. 루프트한자와 에어프랑스-KLM CEO 모두 “높은 운영비용으로 인해 공평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중동항공사들이 제공하는 가격은 우리의 노동계약, 사회적 기준, 프랑스나 독일의 승무원과 조종사 급여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중동 지역에서 일하는 에드몬드 로즈 항공컨설턴트는 “유럽항공사들은 중동항공사의 낮은 운영 비용과 경쟁하기 더 어렵다”고 설명했다.

중동항공사들은 경쟁력 있는 가격뿐 아니라 기내 서비스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며 프리미엄 상품과 서비스에도 투자를 가속화하고 있다. 압둘 와합 테파하 아랍항공운송기구 사무총장은 FT와 인터뷰에서 “중동항공사들이 더 나은 비용 기반과 더 나은 종합적인 상품으로 인해 유럽항공사 등 경쟁사보다 더욱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에미레이트항공의 에어버스 A380-800 여객기 퍼스트 클래스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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