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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이데일리 황영민 기자] 식품접객업을 운영하던 A씨는 지난 2020년 초 자신의 사업장을 B씨에게 양도하는 과정에서 계약금과 잔금을 모두 받아 더이상 자신은 영업을 할 수 없다고 판단, 관할 지자체에 ‘폐업신고’를 했다. 하지만 영업권을 양도할 시에는 폐업이 아닌 ‘영업자 지위승계 신고’를 해야 B씨가 정상적으로 영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해당 지자체에 ‘폐업신고’ 취소 요청을 했으나 이미 처리돼 되돌릴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자신의 착오 때문에 상당한 가치가 있는 영업권을 고스란히 잃게 돼 앞으로의 생계가 막막해진 A씨는 국민권익위원회에 고충민원을 제기, 권익위는 이미 처리된 A씨의 폐업신고를 취소토록 해당 지자체에 권고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2020년 8월 ‘국민권익위, “실수로 폐업신고해 영업권 잃었다면 구제해야” 결정’이라는 제목으로 낸 보도자료의 일부다.
행정절차에 익숙치 않은 자영업자가 실수로 폐업신고를 했을 경우 구제해야 한다는 국민권익위의 권고와 수용 사례가 있음에도 최근 동일한 사례가 발생한 수원시는 “법률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민원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세무관서의 경우 해당 자영업자에 대한 사정을 듣고 사업자등록을 복원시켜 준 반면, 지자체는 어려움에 빠진 자영업자의 고충 민원을 외면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세무서 폐업신고시 지자체도 자동 연계 몰라 낭패.. 수천만원 손실
이후 1월 19일 권리금을 이체받은 이씨는 양도계약을 마친 뒤 1월 31일 홈텍스를 통해 폐업신고를 했으나, 세무관서에 폐업신고가 될 경우 관할 지자체에서도 자동으로 영업신고가 취소된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했다.
미처 영업자 지위승계 신고를 하지 못한 이씨는 수원세무서에 자신의 사정을 전했고, 세무서는 사업자등록을 복원시켜줬다. 이후 이씨는 관할구청인 수원시 장안구청에도 폐업신고를 취소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신규 영업신고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 경우 소방서에 소방시설 완비증명서를 내기 위해 현재 인테리어를 모두 뜯어내고 재시공하는 비용만 수천만 원에 달한다.
심지어 가게를 인수하기로 한 사람마저 행정절차가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자 계약 철회 의사를 내비치며 더 큰 손실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씨는 “코로나19 팬데믹 3년 동안 정부 지원까지 받아가며 근근히 살아가다 이제서야 가게를 정리하고 다른 일을 해볼까 했는데, 행정절차를 잘 몰라 이런 일을 당하게 돼 억울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이같은 이씨의 사례는 권익위가 2020년 폐업신고 취소를 권고하고 관할 지자체가 이를 수용한 당시 상황과 동일하다.
권익위는 앞선 A씨 사례에서 △폐업신고 전에 B씨와 양도계약이 체결됐고 양도금 2400만 원이 A씨 통장으로 입금된 것이 확인된 점 △A씨의 폐업신고는 제도를 잘 알지 못해 발생한 착오이고 고의가 없었던 점 △상당한 가치가 있는 영업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일반상식에 맞지 않은 점 △A씨에게 상당한 손해가 발생한 점 △폐업신고가 취소되더라도 다른 사람의 이익 침해가 없는 점 등을 확인해 폐업신고를 취소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권익위는 권고 이후 후속 조치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묻자 “해당 지자체가 권고 사안을 수용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장안구청 관계자는 “보건복지부와 식약처에도 질의해봐도 환원된 적이 없고, 이미 처리된 영업신고 취소를 다시 철회하는 것은 민원사무처리에 관한 법률에 위배되기 때문에 이씨의 상황이 안타깝지만 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며 “권익위 권고는 권고일 뿐 법령 위에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번 사례와 관련해 변호사이수임법률사무소 이수임 대표변호사는 “이미 권익위에서 동일한 사례에 대해 폐업신고를 취소해야 한다는 판단이 있었고, 해당 지자체가 수용했던 점을 볼 때 수원시의 법리검토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며 “타 지자체 사례를 비춰봐서라도 코로나 시국에 고통 받은 자영업자들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법률 검토와 행정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