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트립in 심보배 기자] 남도로 내려가기 하루 전 날, 나는 스무살 꽃다운 청춘처럼 설다. 알람소리에 맞춰 봄나들이 준비를 마치고, 새벽을 깨운 사람들과 화엄사로 향했다. “봄이여 와라, 네가 오지 않는다면 내가 네게로 갈게.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도록!”
작은 간절함은 2018년 화엄사에서 새롭게 피고 사무친다. 사찰여행은 2017년 6월 기점으로 나에게 다른 의미가 되었다. 이곳에 와서야 깨닫는다.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엄마가 생각나는 장소라는 걸. 지난해 해인사 백련암에 엄마의 49제를 모셨다. 그날 이후 사찰은 그리운 장소가 되었다. 이제는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러나 각황전 부처님 앞에 서자 한 순간 내 안으로 엄마가 들어왔다. 두 손을 모으고 엄마의 평안을 기도 드렸다. 어느새 마음이 온통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발걸음이 저절로 인적 드문 각황전 옆으로 향했다.
화엄사는 대웅전, 각황전 두 건물을 동등하게 부각하며 조화를 이룬다. 이 아름다운 사찰도 전각과 전각이, 피는 꽃들이, 싹을 틔우는 나무들이 조화롭지 않았다면 300년의 시간을 지켜올 수 있었을까? 나는 화엄사 돌계단에 앉아 지금의 나를 돌아본다. 화엄사의 꽃들처럼 때를 알고 그 자리를 지키는지, 지금의 나는 잘 살고 있는지, 철들지 않은 내 마음을 꺼내 본다.
화엄사에 두고 온 바람과 그리움. 홍매화가 활짝 필 때 웃으며 다시 찾으리라. 그때의 화엄사는 부처님 품처럼 머물고 싶은 곳이 되어있겠지. 지금도 빛나는 내 청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