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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미국, 유럽 등 백신 선진국에선 경제 봉쇄 조치를 하나 둘씩 해제하는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 확산·백신 보급 양극화는 결국 경제 양극화를 야기할 뿐 아니라 ‘코로나 종식’과도 거리를 멀게 한다. 한편에선 변이 바이러스 확산에 백신 확보전 양상도 달라지고 있다. 백신 선진국에선 부작용이 적고 변이에도 효과적인 백신을 확보하는 반면 부작용 우려가 큰 백신은 저개발 국가로 이전될 가능성이다.
저개발 국가 “인도, 남일 아냐”..미국·EU 봉쇄 해제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달 들어 전 세계 일일 확진자 수가 90만명을 넘는 일이 잦아들고 있다. 지난달 28일엔 90만5992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 뒤로 오르락내리락했으나 8일 기준으로 78만6546명이 발생해 줄어들지 않고 있다.
전 세계 백신 접종률은 작년말 0.06%에서 서서히 증가, 8.28%까지 올라갔는데 확진자 수는 줄어들지 않고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모습이다. ‘저조한 백신 보급’,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대표되는 인도 때문이다. 인도는 지난달 30일 일일 확진자 수가 사상 처음으로 40만명을 돌파한 데 이어 이달 6일 41만4188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인도는 대규모 종교 모임에 따른 방역 실패도 있지만 저조한 백신 보급, 변이 바이러스 확산 등으로 언제든 저개발 국가들이 인도처럼 겉잡을 수 없는 코로나 화약고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인도에선 지역별로 봉쇄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 수도 뉴델리를 비롯한 뭄바이가 있는 서부 마하라슈트라주 등은 이미 일시 봉쇄령이나 이에 준하는 방역 조치를 도입했다. 남부 타밀나두주는 10일부터 24일까지 전면 봉쇄조치에 들어갔다. 인도 최대 철강 업체 JSW는 산소 부족과 산업 수요 감소에 생산량을 10% 줄였고 생산 감축은 9월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도했다.
반면 미국, 영국 등 백신 선진국에선 봉쇄 조치를 해제할 만큼 코로나가 통제되고 있다. 미국 뉴욕와 뉴저지, 코네티컷주는 19일부터 식당, 체육관, 각종 판매업소에 적용됐던 인원 제한 규정을 폐지한다. 영국은 내달 21일부터 코로나 봉쇄령을 전명 해제한다고 밝혔다. 코로나로 8만명 가까이가 사망한 스페인은 9일 자정을 기점으로 2차 전국 비상사태를 해제했다. 이탈리아는 이달 중 유럽연합(EU), 영국, 이스라엘 관광객에 대한 격리 조치를 면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백신을 1회 이상 맞은 인구가 전체의 62.61%를 차지하고 있고 미국과 유럽은 각각 45.24%, 23.96%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은 하루 확진자 수가 3만~4만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미국, 유럽 등에선 백신 접종률이 20% 이상으로 비교적 높은 반면 남미(13.09%), 아시아(4.56%), 아프리카(1.03%) 등은 낮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미국, 유럽이 쌓아둔 백신을 저개발 국가와 백신 접종률이 낮은 국가에 나눠줘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문제는 방법이다. 미국에선 코로나 백신 지식재산권을 일시적으로 면제하는 방안을 지지하나 독일 등 유럽에선 많이 생산해서 배포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EU는 자체 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수출했다”며 “미국도 이를 따라야 한다. 특허 면제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백신을 공급할 수 있는 해결책은 아니다”고 말했다. EU는 지난 3일부터 45개국에 약 1억 7800만회분의 백신을 수출했다.
백신 선진국인 미국, 유럽이 다른 나라로 백신을 풀면서 ‘백신 자국주의’가 완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또 한 가지 변수는 남아있다. 지금까진 ‘닥치고 백신 확보’였다면 앞으론 부작용이 적고 변이 바이러스까지 차단할 수 있는 ‘질 높은 백신’을 누가 먼저 확보하느냐가 주요 경쟁의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질 낮은 백신은 결국 저개발 국가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일단 EU는 혈전(혈액 응고)에 희귀성 신경 퇴행성 질환 등 부작용이 우려되는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6월 이후엔 추가 주문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2021년부터 2013년까지 18억회분 용량의 화이자-바이오엔테크와 백신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화이자 백신과 같은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이 뉴욕발,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진 데다 인도발 변이까지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 의회에 출석해 “유럽에선 AZ 백신을 맞고 있지만 향후 변이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해선 다른 백신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반면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에선 1억4350만개의 백신 중 절반 이상(7580만개)이 중국산 백신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중국 시노팜에 긴급 사용승인을 내렸으나 백신 효력은 79%로 90% 이상인 화이자 등보다 낮고 60세 이상에선 효능을 증명하지 못했다. 변이 바이러스에도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도미니카공화국, 파라과이 등에선 백신 강국은 미국을 향해 남아도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라도 수출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