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없어서 줄줄이 가격 올린다…초유의 美 인플레 충격

미국 전역 강타하는 복합 인플레이션 공포
임대 매물 품귀…월 1000달러 올려주기도
공급망 붕괴하자…'천원숍'마저 가격 인상
반도체 부족에 신차·중고차·렌트카 직격탄
구인난에 임금 인상…소비자 가격에 전가
기업인들 "이런 혼란 처음…수년 더 간다"
  • 등록 2021-09-30 오후 4:14:58

    수정 2021-09-30 오후 10:16:09

미국 해상 물류의 주요 거점인 캘리포니아주 롱비치항에 수만개의 컨테이너가 쌓여 있고 수십척의 화물선이 배 위에 뜬 채 하역을 기다리고 있다. 하역 절차 지연에 따른 운송비 폭증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지면서, 각 기업들은 소비자 가격을 올릴 채비를 하고 있다. (사진=AFP 제공)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지난 5월 미국으로 업무차 이주한 기업인 D씨. 그는 집을 구하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뉴욕 맨해튼으로 1시간 내 출퇴근이 가능한 뉴저지주 북부 버겐카운티 주변에는 매물로 나온 집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수리가 잘 돼 있는 집을 월 임대료 4800달러(약 570만원)에 계약했다. 주재원으로서는 부담이 매우 큰 액수다.

그런데 여기에는 속사정이 있다. 미국에서는 앞선 임대료 기록들이 있어서 월세를 단박에 올리는 건 무리가 있다. D씨가 계약한 집은 이전보다 많이 올려서 당초 4500~4600달러에 가격이 형성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 집과 계약하겠다며 날아든 신청서(application)가 무려 12개였다. 예비 세입자들 사이에 경쟁이 붙은 것이다. 그렇게 월 200~300달러 추가 상승했다.

당시 거래를 중개했던 부동산 중개인은 “팬데믹 이후 생활 여건이 괜찮은 교외로 나오려는 수요가 늘면서 매물이 부족하다”며 “한 번 올라간 임대료는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4개월가량 지난 9월 말 현재 인근의 주택 사정은 더 악화했다. 또다른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매물 자체가 없다”고 전했다. 1년 계약 만료 후 재계약을 할 때는 기존 대비 1000달러 이상 높이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한국 돈으로 갑자기 월 100만원 넘는 예상치 못한 지출이 발생하는 셈이다.

월 100만원 넘게 더 주고 집 임대 계약

이같은 임대 매물 품귀 현상은 통계가 방증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8월 임대료 평균을 나타내는 질로우 지수(Zillow Index)는 전년 동월 대비 11.5% 올랐다. 플로리다주, 조지아주, 워싱턴주에 위치한 일부 도시들의 임대료는 25% 이상 폭등했다. 블룸버그는 “뉴욕 지역에서는 집주인들이 임대료를 70% 넘게 올리고 있다”고 전했다. 줌퍼 내셔널 렌트 리포트는 이같은 임대료 상승률을 두고 “충격적인 수준”이라고 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 다우존스 지수(S&P Dow Jones Indices) 등에 따르면 7월 S&P 코어로직 케이스-실러 주택가격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19.7% 상승했다. 미국 전역의 집값이 1년새 20% 가까이 올랐다는 뜻이다. 주택 매매가 상승과 이에 따른 임대료 급등은 인플레이션 장기화의 주범으로 손꼽힌다.

임대료뿐만 아니다. 최근 미국 동부를 강타한 홍수로 갑자기 차량 두 대가 침수된 A씨는 물가 폭등의 실상을 톡톡히 경험했다. 미국은 차량이 없으면 사실상 이동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차량을 구해야 했다. A씨는 “신차를 사려면 한참 기다려야 했고 중고차 가격은 터무니없이 높아서 고민했다”며 “반도체가 부족해 차량 공급이 부족하다는 뉴스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2019년식 중고 대형 SUV를 4만달러 넘게 주고 구입했다. 예년 같으면 상상 못할 정도로 비싼 가격이다.

뉴저지주에서 작은 일식당을 운영하는 사장 E씨. 그는 몇 달째 직원을 뽑지 못해 아내와 둘이 가게를 맡고 있다. 그렇게 한 지 벌써 1년반이 지났다.

이유는 다름 아닌 구인난 탓이다. E씨는 “팬데믹 전에는 주급 600달러 안팎에 팁을 더하면 직원을 뽑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다”고 토로했다. 식당 규모가 크지 않다 보니 마냥 임금을 올려줄 수도 없었다. E씨는 “아내가 배달 나가면 주문 전화를 받을 수 없어서 배달을 하지 않고 있는데, 그렇다 보니 매출 타격이 크다”며 “직원을 채용하면 결국 음식 가격을 올리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 탓에 생산량 감축에 들어간 제네럴모터스(GM)의 미국 미시건주 랜싱 공장 인근은 한 차량이 지나가고 있다. 차량 공급이 대란을 겪으면서 신차, 중고차, 렌트카 등의 가격이 일제히 치솟고 있다. (사진=AFP 제공)


‘천원숍’ 달러트리마저…가격 올린다

글로벌 공급망 붕괴 여파는 서민층이 주 고객인 ‘미국판 천원숍’ 달러트리까지 덮쳤다. 달러트리는 앞으로 더 많은 제품에 1달러가 넘는 가격표를 붙이기로 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달러트리는 1986년 창업 이후 ‘1달러’ 가격 정책을 30년 넘게 고수해 왔다. 그러나 2년 전 소수 품목에 한해 1달러를 넘는 ‘달러트리 플러스’를 도입했고, 이번에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추가 인상에 나섰다. 마이클 위틴스키 달러트리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경제 환경에서는 가격 조정이 필요하다”며 “모두가 임금, 운송 등에서 비용 상승을 경험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태평양을 건너 화물선에 실려 오는 제품의 도착이 늦어지면서 운송비가 확 늘었다. 미국 주요 항구 인근 바다에 수만개의 컨테이너가 쌓여 있고 수십척의 화물선이 둥둥 떠서 하역 절차를 기다리고 있는 건 공급망 붕괴의 상징적인 장면이다. 뉴욕에서 사업을 하는 J씨는 “(팬데믹 이후 수요는 늘어나는데 운송 시간이 길어지면서) 한국에서 상품을 실어올 배를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다”며 “2023년까지는 이런 혼란이 이어질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달러트리는 사상 처음 전세 선박까지 동원해 자사 제품을 실어올 전용 공간을 예약하기로 했다.

대형 유통체인 코스트코는 “추후 1년간 소형 컨테이너선 3척과 컨테이너 수천개를 임차해 아시아에서 미국과 캐나다로 물품을 직접 운송할 것”이라고 했다. 월마트와 홈디포 역시 배를 빌리려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한 집 앞에 매매 안내판이 걸려 있다. 최근 미국 내 주택 가격과 임대료는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사진=AFP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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