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불거진 대북 전단(삐라) 문제 탓이다. 북한은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의지와 능력을 보여 달라며 대북 전단에 대한 제재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일단 만나서 이야기하자며 기존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대북 전단을 날리는 것은 기본권에 속하는 표현의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도구적인 가치인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이를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논리다.
여기까지는 지난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지난 6일 법원에서 휴전선 인근 지역 주민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살포를 제지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그동안 남북 관계 긴장을 조장하던 대북 전단 살포를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다던 정부에 새로운 시사점을 던지는 판결이었다.
8일 외통위 전체회의에 참석한 류길재 통일부 장관도 대북전단 문제와 관련해 “주민의 안전을 위해 취해야 할 조치가 있다면 취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법원 판결 이후 정부의 태도가 한발 나아가는 듯 했다가 다시 뒤로 물러서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원 판결 이후 여야 정치권과 학계 등에서 남북 관계 개선과 주민들의 생존권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는 데 대해서는 “우리 국민의 신변에 위협이 있을 경우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면서도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는 없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정부의 기본 원칙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전술과 방법론의 변화를 보여줄 때라는 이야기다. 지금의 정부 입장은 외교 전략의 일종인 전략적 모호성을 노렸다고 보기엔 전략이 없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대북 전단 이슈를 일석이조의 기회로 만들 것인지,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보게 되는 선례로 남길 것인지 우리 정부의 대북 관계 능력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