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 명예직`으로 불리는 모범운전자가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택시업계가 고령화 등으로 극심한 구인난을 겪는 데다 모범운전자에 대한 혜택은 전무해 기존 가입자는 이탈하고 신규 가입자는 줄어드는 실정이다. 모범운전자가 그동안 부족한 교통경찰 인력을 대신해 왔던 만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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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 기온이 33도까지 치솟은 지난달 26일. 20년째 모범운전자 자격을 유지 중인 택시기사 안승형씨는 서울 중랑구 망우동 신내지하차도 사거리 앞에서 쉴 새 없이 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안씨는 “더운 날씨에 길거리에서 교통 봉사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라며 “당신이 경찰도 아니면서 뭔데 그러냐는 식의 모욕을 당하기도 일쑤”라고 말했다.
개인택시 3부제(이틀 근무 뒤 하루 휴무)가 전면 해제된 뒤 모범운전자의 봉사 활동이 더욱 위축됐다는 의견도 있다. 의무적으로 쉬어야 하는 날이 없으니 교통 봉사도 하지 않으려 한다는 얘기다. 중랑모범운전자회 소속 최모(61)씨는 “택시 부제가 해제되고 봉사할 시간에 돈 버는 운전자가 많아졌다”며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든 날씨에 누가 교통 봉사를 하고 싶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도로교통법 2조에 따르면 모범운전자는 2년 이상 사업용 자동차(택시 등) 운전에 종사하면서 교통사고를 낸 전력이 없어야 선발될 수 있다. 주로 출퇴근 시간대 교통 봉사를 하거나 등하굣길 어린이 안전 보행을 돕는 역할을 한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경찰청 지침에 따라 연간 7개의 교통법규 위반 면제권을 받지만, 극히 제한적으로 적용돼 유명무실하다는 게 모범운전자들의 불만이다. 실제 해당 면제권은 주정차 위반과 20km 이하 구간 과속 등 벌점 15점 이내의 사안에 한 해서만 적용된다.
택시업계 고령화까지 겹쳐 감소세
모범운전자연합회는 경찰청 산하 사단법인이지만 정작 경찰청도 뚜렷한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모범운전자들은 봉사활동을 무급으로 하는 것보다 일정 정도 수당을 받기를 원하는데 예산이 없어 실질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며 “별도로 대책을 마련할 계획은 아직 없는 상태”라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모범운전자에 대한 혜택을 강화하는 등 유인책을 마련하고 동기부여를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상습 체증 구간이나 출퇴근 시간대에는 모범운전자의 교통 통제 역할이 여전히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이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표창이나 최소한의 식대·유류비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재원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경찰의 무관심과 더불어 뚜렷한 혜택이 없으니 모범운전자 제도는 갈수록 명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경찰이 모범운전자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다면 확실한 당근을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