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에서 악기 교습소를 운영하는 서모(30)씨는 전날 미리 준비해 놓은 도시락을 챙겨 출근한다. 인근 식당에서 8000~9000원짜리 점심백반을 사 먹었지만 이 비용마저 부담스럽게 느껴져서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마실 커피나 차도 보온병에 넣어 다닌다. 서 씨는 “지난해 할부로 중고 외제차를 샀는데 매달 할부금 갚기도 버겁다”며 “연말에 결혼을 앞두고 살 집을 알아보면서 있는 빚부터 빨리 갚자는 생각에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게 됐다”고 했다.
고물가 시대에 교통비와 식비 등을 조금이라도 아끼려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들의 분투가 이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에 국내 기름값이 여전히 비싼데다, 전기세 등 공공요금과 각종 식료품 가격 인상 등으로 경제적 쪼들림이 심해져서다. 특히 MZ세대는 지난해 저금리 시기 속 ‘빚투’로 부동산, 주식, 코인 등 각종 투자에 나섰던 이들이 많고, 상대적으로 수입이 적어 고육책을 짜내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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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씨처럼 자동차로 출근하던 젊은 직장인들은 기름값을 아끼려 자전거를 이용하는 ‘따릉이족’이나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뚜벅이족(주로 걸어 다니는 사람)’으로 변신하고 있다. 19일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서울시의 공공자전거 따릉이의 애플리케이션(앱)인 ‘서울 자전거’의 사용량 추이는 크게 증가하고 있다. 앱 사용량은 지난해 1월 기준 21만 5736명이었으나 올해 6월 기준 62만 1250명으로 증가했다.
직장인 홍모(34)씨는 “출근 시간에는 여유가 없어 버스를 타지만, 퇴근은 운동 겸 절약으로 한강을 따라서 따릉이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모(33)씨는 “몇달 전만 해도 내 차를 몰아서 경기도 집에서 서울 직장으로 출퇴근했다”면서 “몇 달 간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니 절약한 돈이 꽤 된다”고 말했다.
‘런치 플레이션에 도시락’ …데이트비용 다이어트도
직장인 김모(32)씨는 “냉면 한 그릇에 9000원, 돌솥비빕밥 한 그릇도 만원은 줘야 해 부담이 된다”면서 “매일 드는 점심값이 아까워 도시락을 싸서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 문모(35)씨는 “외부 식당에서 먹으면 한 끼에 만원은 써야 하지만 구내식당은 값도 저렴하고 가까우니 자주 먹으러 간다”고 했다.
데이트비용 다이어트를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영화관을 찾는 대신 집에서 OTT를 함께 보거나,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에 5000원 육박하는 유명 브랜드가게 아닌 저렴한 커피숍을 찾는 식이다. 서울 양천구의 서모(30)씨는 “영화관이나 쇼핑몰 대신에 요샌 여자친구와 서울시내 박물관을 다닌다”며 “역사박물관, 전쟁기념관 등을 ‘투어’하듯 다니니 입장료는 저렴한데 더위도 피하고 뭔가 배우는 것 같아 좋다”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고물가 시기 속 지난해 영끌 투자에 나섰던 MZ세대들을 중심으로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면서 “지출비용을 전략적으로 줄이기 위한 행태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