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골라태우기' 막으려 '도착지 미표시' 의무화…택시잡기만 힘들어질수도

국토부, 중개택시 '도착지 미표시 의무화' 법 적극 지원
"법으로 정할 문제 아냐…기사와 승객 모두 불편, 배회영업만 부추길 것"
"택시 기사의 장거리 콜 선호는 낮은 임금과 높은 사납금 때문"
  • 등록 2022-11-02 오후 5:06:40

    수정 2022-11-02 오후 9:23:21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국토교통부가 택시 호출 시 기사에게 도착지를 알려주지 않게 의무화하는 법안을 추진한다. 택시기사들이 택시 호출(콜)을 잡기 전에 승객들의 도착지가 사전에 표시되는 현행 시스템이 택시기사의 ‘승객 골라잡기’의 원인이라고 본 까닭이다. 하지만, 플랫폼 업계는 택시기사들의 승객 골라잡기는 도착지 표기 때문이 아니며 오히려 승객과 택시기사들 모두의 불편을 가중시키고 서비스 질을 떨어뜨릴 것으로 우려했다. 법으로 뭔가를 자꾸 강요하는 모습은 서비스 혁신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도 나왔다.

국토부, 정기국회서 해당 법안 적극적으로 추진


2일 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국토부는 정기국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법안은 진성준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월 대표발의해 국회 국토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국토부는 해당 법안을 기반으로 정기국회서 법 개정 필요성을 설득한다는 계획이다.

진 의원이 발의한 여객자동차법 개정안은 지금은 규제 대상이 아닌 플랫폼 중개택시까지 규제하는 내용이다. 예전에는 플랫폼 운송사업자(직영택시)와 플랫폼 가맹사업자(가맹택시)에 대해서만 국토부 장관이 운송질서의 확립 및 여객의 편의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약관 개선명령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개정안은 이를 플랫폼 중개사업자로 확대하고 중개택시 기사에게 탑승 전 승객의 도착지를 사전 고지해선 안된다고 못 박았다.

현재 가장 대중적으로는 쓰이는 카카오모빌리티의 카카오T택시를 포함한 대부분의 중개택시가 도착지가 택시기사 콜 수락 전 노출된다. 티머니의 ‘온다’ 택시만 중개택시이나 도착지를 표기하지 않는다.

서울시가 중개 플랫폼 택시에도 도착지 미표시를 시행할 것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공문 (출처 = 서울시)
이는 서울시와 주요 택시단체가 주장해왔던 내용이기도 하다. 지난 2월 서울시는 평일 밤 도심에서 비도심 단거리 호출 성공률은 23%로, 같은 조건의 장거리 호출 성공률 54%의 절반 이하로 나타난다는 ‘카카오택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서울시는 이를 카카오택시가 승객 도착지를 기사에게 사전 제공하기 때문에 골라태우기가 일어난 결과라고 주장했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등 4개 택시 단체 역시 도착지 미표기가 기사들의 골라태우기를 방조하는 주된 요인이라고 밝혔다.

승객 골라태우기가 도착지 표기 문제?…“불편 가중될 것”

그러나, 플랫폼업계는 승객 골라태우기는 피크시간대에 택시기사들이 더 많은 수입이 올리기 위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요-공급의 불일치’ 때문이지 도착지 표기가 근본 원인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오히려 도착지 표기와 승객 골라태우기의 인과관계가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법으로 이를 강제할 경우,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는 ‘혁신’ 동력이 떨어지고 택시기사와 승객 모두의 편익이 감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978년 조선일보의 택시승차난을 지적한 기사.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택시 승차난은 40년 전부터 지속했던 문제”라며 “모든 플랫폼이 도착지를 미표기하게 되면 피크시간대 택시기사들은 앱을 끄고 길거리에 있는 손님을 태우는 배회영업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전체적으로 효율성이 떨어지며 택시기사와 승객 모두 불편을 겪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카카오모빌리티는 2018년 ‘스마트호출’을 출시하며 도착지 미표기 방식을 도입했으나 기사들의 호출 수락률이 크게 떨어져 서비스를 접은 경험이 있다. 당시 전체 콜 대비 스마트호출 수락률은 한자릿수대로 승객들에게도 불편을 줬다는 얘기다.

같은 맥락에서 도착지 미표기를 통한 앱 승차거부 근절을 내세웠던 서울시의 공공플랫폼 지브로와 S택시 역시 이용 저조로 서비스를 중지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또다른 관계자는 “도착지 미표기가 진짜 택시기사들이 원하는 안인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사전에 알게 되면서 택시기사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사업구역 밖으로의 운행이나 교대 시간에 차고지와 먼 도착지로의 운행 등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배차이후 이를 나중에 취소해야 하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그는 “택시기사들의 낮은 임금과 높은 사납금 구조가 장거리 콜을 선호하는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는 법으로 강제해야 할 사항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디지털 시민사회를 표방하며 자율규제를 강조하는 윤석열정부가 자꾸 민간에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문제가 있다면 택시업계, 시민사회, 플랫폼업계, 정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토론하며 자율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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