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오토in] 카가이 장희찬 기자= 바야흐로 소형 SUV 전성시대다. 2016년 르노삼성 QM3, 쌍용 티볼리로 시작한 소형 SUV 시장은 2018년 현대 코나가 가세하면서 탄력을 받았다. 지난해 기아 셀토스, 올해 초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가 가세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달에는 르노삼성 XM3가 가세하면서 생애 첫 차로 구매하는 20~30대 젊은층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기존 쏘나타 같은 중형 세단을 탔던 중장년 층도 소형 SUV 시장으로 'U턴'하는 기현상도 벌어진다.
이로 인해 거덜난 세그먼트도 등장한다. 대표적인게 지난해 모두 단종한 소형차(세단 및 해치백) 시장이다. 현대 엑센트, 기아 프라이드,한국지엠 아베오가 대표적이다. 한국에 소형차 시장은 없어졌다. 단순히 소형차를 넘어 올해는 상황이 더 급박하다. 대표적인 타격이 준중형 세단 시장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준중형세단 시장은 자동차 세그먼트에서 최대 규모였다. 현대 아반떼,기아 K3,한국지엠 라세티(후에 크루즈), 르노삼성 SM3가 4파전을 하면서 시장을 키웠다. 아반떼는 베스트셀링 모델을 한 두해 빼고는 놓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소형 SUV가 대박을 내면서 준중형 시장마저 쪼그라드는 신세가 됐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국내 만의 문제가 아니다. 북미와 중국을 필두로 소형차가 강한 유럽까지 타격을 받는 전세계적인 트렌드 변화다.
지난달 현대기아차 아반떼와 K3의 판매량은 작년 동월 대비 50% 가량 감소했다. 코로나19의 위력도 무시 못할 팩터이지만 이러한 판매량 감소 추이를 이끈 것은 소형 SUV의 득세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젊은 세대들이 SUV를 선호하는 것은 SUV 전체 장르가 커지면서 다양한 신차가 나오면서다. 여기에 가격 경쟁까지 가세하면서 잇따라 가성비를 갖춘 차량이 등장한다. 기존 SUV 시장은 볼륨 모델이 중형급으로 가격대가 3천만원대를 훌쩍 넘었다. 대표적인 모델이 현대 싼타페, 기아 쏘렌토다. 첫 차로 구매하려는 사회 초년생이 다가가기 힘든 금액이었다.
최근 등장한 소형 SUV는 이런 고정 관념을 바꾼다. SUV 스타일링과 공간 활용도를 모두 이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소형 승용차 가격대로 나온 것이다. 기존 장벽을 무너트린 SUV는 자신만의 강점을 마음껏 어필하면서 준중형 세단 시장을 유린하고 있다.
SUV가 첫 차 구매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은 단순히 가격 문제 만은 아니다. 가격 문제였다면 소형 SUV 보다 10% 이상 저렴한 준중형 세단이 이렇게 급감하지 않았을 것이다. SUV의 높은 시트고와 상대적으로 큰 전면 유리는 운전을 편리하게 해주는 가장 큰 요소다. 시야가 기존 소형 승용차에 비해 압도적으로 넓다. 이런 시야각에서 장점은 곧 안전성과도 연결이 된다. 첫 차 구매자에게 SUV가 가장 좋은 선택지가 되는 것이다.
또 최근 레저 문화가 발달하면서 기존 소형 승용차 적재공간으로는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캠핑 혹은 자전거 같은 아웃도어 레저가 활성화하면서 그에 걸맞는 적재공간이 큰 차량이 필요해진 것이다. SUV가 단순히 아저씨의 낚시용 차량 이미지에서 벗어난 것 또한 준중형 세단에게는 악재인 셈이다.
국내의 경우 사회적 시선 또한 차량 구입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분석된다. 소형차나 경차는 상대적으로 안전에서 미흡하다는 인식과 함께 큰 차량 선호 스타일이 맞물려 더 안전해 보이고 사회적으로 무시 받지 않는 SUV로 방향을 트는 것이다.
최근 부동산 급등으로 ‘욜로’, ‘카푸어’ 등을 양산하면서 보유 자산을 자동차 쪽에 쏟아 붙는 경우도 늘었다. 이런 한국적 특수 상황도 소형차와 준중형 세단의 말로를 앞당겼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가 단순히 국내 만의 갈라파고스적 행태가 아닌, 전 세계적 트렌드라는 점에서도 마찬가지다. SUV의 강세, 소형 세단의 약세는 앞으로 더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만 해도 내수 시장에 르노의 새로운 QM3(캡쳐) 같은 소형 SUV가 쏟아진다.
이러한 소형 SUV 시장에서 국내 브랜드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는 것도 눈여겨 볼 포인트다. 현대기아자동차는 베뉴, 코나, 셀토스 등 전략적인 소형 SUV를 글로벌 히트를 기록하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소형 SUV 만큼은 글로벌적으로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소형 세단의 몰락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존재한다. 소형 세단은 고급 세단의 발판이 되는 모델이다. 넓은 표본 영역으로 시장 반응을 파악해 전체적인 자동차 메이커 세단 라인의 디자인 언어, 포트폴리오 아웃라인을 잡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세단 시장이 중형 이상급 포트폴리오 개진에만 집중한다면, 디자인이나 기술의 발전이 상대적으로 미흡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음달 현대차의 야심작 아반떼 풀모델체인지가 데뷔한다. 렌터카나 영업용 차량이 아닌 자가용으로서 선택을 얼마나 받을지 아울러 준중형 세단 반전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인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