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3월 정책금리 인하 기대를 차단한 1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파월 의장보다 더 센 ‘매파(긴축 선호)’ 면모를 보였다. 이 총재는 미국 경제가 ‘골디락스(물가상승이 없는 경제 성장)’로 가고 있어 미국 뿐 아니라 우리나라 금리 인하 시점도 지연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미국 물가가 우리나라보다 더 빨리 목표(2%)에 안착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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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재는 이날 서울 소공로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제2회 한국최고경영자포럼 기조연설을 통해 “전 세계가 금리를 빨리 올릴 때 한은은 국민의 부담을 낮추기 위해 가급적이면 천천히 올렸다”며 “미국, 유럽 등의 국가가 빨리 금리를 내린다고 해 한은이 빨리 내릴 것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12월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상승률이 2.8%까지 내려왔는데 국민들이 체감하는 생활물가는 3%대이기 때문에 생활물가가 높아 기대인플레이션율을 낮추기 어렵다”며 생활물가가 떨어져야 기대인플레이션율도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섣불리 금리를 낮췄다가 인플레이션이 올라가 다시 금리를 올려야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미국의 골디락스 경제 상황이 한은의 금리 인하 시점을 늦출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 총재는 “파월 의장이 (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 기자회견에서) 3월 금리 인하가 성급하다고 발언했는데 그 배경에는 미국 성장이 높았던 점이 있다”며 “이는 우리나라 수출 측면에서는 좋은 뉴스이나 금리에는 부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우리나라 금리 인하 속도도 늦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 총재의 이러한 발언이 지난 달 11일 금융통화위원회 기자회견에서 “6개월 이상 금리 인하가 쉽지 않다”고 밝힌 것과 비교해 금리 인하 시점을 더 지연시키는 발언인지 여부는 알기 어렵다.
이 총재는 이를 기초로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물가목표치에 더 빠르게 안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2% 목표까지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더 빨리 달성할 수 있다고 봤는데 미국 물가가 우리나라보다 더 빨리 2%로 안착될 수 있다”며 “이에 따라 금리 정책이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작년말까지만 해도 한은은 우리나라 물가 목표 도달 시점을 올해말 또는 내년초로 봤고 연준은 2026년으로 전망한 바 있다.
이 총재는 “국제유가가 경제 상황에 미치는 영향이 큰데 현재로선 기존 전망대로 (브렌트유 기준) 배럴당 85달러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 대선 전까지는 중동지역간 확전 가능성이 낮아보이나 대선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알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구조조정 하라’, 금리 내려서 해결될 성장 아니다”
이 총재는 “많은 분들이 저를 찾아와서 물가가 3% 밑으로 내려가면 경기를 위해 금리를 낮추라고 한다”면서도 “물가는 한은이 담당하나 성장은 구조적인 문제 해결 없이 재정이나 통화정책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금리를 섣불리 내리면 돈이 부동산으로 갈 것”이라며 “지난 10년간의 잘못을 반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산업별 국내총생산(GDP) 대비 대출 비중을 보면 전기장비, 전문과학 분야는 크게 증가하지 않았음에도 실질부가가치가 높아진 반면 부동산업은 GDP의 두 배 넘게 대출이 늘어났음에도 실질부가가치가 크지 않았다. 이 총재는 “지난 10년을 낭비했다”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조정 등 필요한 것을 고치지 않고서는 단기 성장이 어렵다”고 밝혔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2000년부터 중국에 중간재를 팔면서 우리나라 제조업 비중이 증가하는 등 ‘중국 특수’를 누린 것이 구조조정에는 독이 됐다고도 평가했다. 이 총재는 “2000년부터 중국 특수를 누리면서 15년 정도 구조조정을 안 했다”며 “이 기간 동안 우리는 중국에 대해 더 많은 제품을 팔려고 했지, 중국을 경쟁자로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이 미국에 파는 제조업 비중은 줄었어도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제조업 비중은 줄어들지 않았다”며 “이는 제조업에서 중국과의 경쟁이 약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또 이 총재는 “내년 합계출산율이 0.6명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이렇게 아이를 안 낳는 나라가 없다”며 “출산율이 이렇게 빨리 떨어지는 상황에서 성장률이 오르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