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유일 합법정부’ 빠진다…자유민주→민주주의로

교육부 역사과 교육과정 개정 행정예고, 20일 뒤 확정
2020년 중·고교 신입생 배울 새 역사교과서부터 적용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6.25 남침’도 표기
  • 등록 2018-06-21 오후 2:28:53

    수정 2018-06-21 오후 2:42:12

교육부 관계자가 중고교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을 확인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국정 역사교과서를 대체할 새 검정 역사교과서에는 ‘자유 민주주의’란 표현 대신 ‘민주주의’가 쓰인다. 대한민국을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라고 서술해야 한다는 규정도 삭제됐다. 국정역사교과서 추진 당시 논란이 됐던 ‘대한민국 수립’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이러한 내용의 ‘중등 역사과 교육과정’ 개정안을 행정 예고한다고 21일 밝혔다. 행정 예고기간은 다음달 12일까지 20일이다. 이번 개정안이 확정될 경우 2020년 중·고교 신입생이 사용할 역사교과서부터 적용한다.

자유민주주의→민주주의로 용어 통일

이번 개정안은 지난해 5월 31일 문재인 정부 출범 뒤 중고교 역사교과서 발행체제를 ‘국정’에서 ‘검정’으로 전환한 데 따른 것이다. 전임 박근혜 정부에서 마련한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자유민주주의’란 표현을 쓰도록 했지만, 이번 개정안은 이를 ‘민주주의’로 대체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역대 역사교과서에서 활용된 용어는 대부분 민주주의였음에도 2011년 교육과정 개정에서 이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꾼 뒤 학계와 교육계에서 수정 요구가 많았다”며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정치와 법’ 과목에서도 민주주의로 기술했으며 사회과 다른 과목도 모두 민주주의란 용어를 활용하고 있다”며 개정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가 2007년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도입할 당시에는 ‘민주주의’란 용어가 쓰였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새 교육과정부터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대체했다. 앞서 2000년대 중반까지의 중·고교 국사교과서는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란 표현을 함께 써왔다.

이번 교육부가 마련한 개정안에서 이를 ‘민주주의’로 통일해 쓰도록 하면서 이념논쟁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커졌다.

진보진영은 ‘민주주의’란 용어 자체에 ‘자유’가 포함돼 있어 ‘자유’를 빼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자유민주’란 표현이 1970년대 유신헌법에 처음 등장했으며 ‘반북·멸공’의 의미도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보수진영은 1987년에 만들어진 현행 헌법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언급하고 있다며 이에 반발하고 있다. 특히 ‘자유’를 뺄 경우 사회민주주의나 인민민주주의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맞서고 있다.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 문구도 삭제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규정하는 표현도 빠진다. 해당 표현을 쓰도록 규정하기보다 교육과정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과 의의를 살펴본다’는 식으로 포괄적으로 명시하기로 했다. 기존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에는 ‘유엔으로부터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받은 사실’을 서술토록 했다. 교육부는 개정안에서 이 부분을 삭제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이에 대해 “남북한은 1991년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는 점에서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를 교육과정에 명시하는 것은 시비의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보수진영은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는 대한민국뿐이라며 이런 주장에 반발하고 있다. 1991년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한 뒤 남한만을 유일 합법정부로 승인한 ‘1948년 유엔 총회 결의’를 놓고 해석이 갈리는 것이다.

1948년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표현했던 서술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뀐다. 이는 박근혜 정부 당시 교육부가 국정교과서를 추진할 때도 논란이 됐던 표현이다. 임시정부가 세워진 1919년에 이미 대한민국이 수립됐기에 1948년은 ‘정부 수립’ 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거셌다. 이를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하면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을 부정한다는 논리가 제기됐다.

개정안은 이런 입장을 받아들여 앞으로 개발될 역사교과서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란 표현을 쓰도록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계의 통설과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입장, 독립운동의 역사를 존중한다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6·25 남침’ 표현은 명시하기로 했다. 교육과정은 ‘대한민국의 발전’을 설명할 때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의 전개 과정과 피해 상황, 전후 남북 분단이 고착화되는 과정을 살펴본다”고 기술했다. 올 초엔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시안 마련 과정에서 ‘남침’이란 표현이 누락돼 논란이 된 바 있다.

개정안은 다음달 12일까지 행정예고 기간을 거쳐 최종 결정된다. 교육과정이 확정되면 이에 따라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이 8월까지 마련되며 이를 적용한 새 역사교과서는 2020년 중·고교 신입생들부터 사용한다.

기존 2015 역사과 교육과정과 개정안 비교(자료: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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