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대선, 에르도안 과반 미달… 30년 '종신집권' 일단 제동

에르도안 대통령 49.4% 클르츠다로을루 대표 44.96% 득표
28일 결선투표서 재대결…캐스팅보트는 3위 오안 대표에게
최악 경제난·대지진에 여론조사 뒤지던 에르도안 '예상밖 선전'
안정 원한 중장년층 지지에 선심성 공약 주효
  • 등록 2023-05-15 오후 4:43:29

    수정 2023-05-15 오후 7:25:03

[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세기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튀르키예 대통령 선거가 결국 승자를 가리지 못하고 결선 투표로 넘어가게 됐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69) 대통령은 과반 득표에 실패하면서 경쟁자인 케말 클르츠다로을루(74) 공화인민당(CHP) 대표와 다시 맞붙게 됐다.

14일(현지시간) 투표에 나선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CHP) 대표. (사진=AFP)
예상 밖 선전한 에르도안…선심성 공약 주효

15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대선에서 연임에 도전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득표율 49.4%를 확보하며 맞수로 나선 야권 단일후보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 대표(44.96%)를 앞섰다. 양 후보 모두 과반수 득표를 하지 못하면서 오는 28일 결선 투표를 통해 최종 승자를 가리게 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결선 투표 없이 승리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2차전도 환영한다”고 말했다. 클르츠다로을루 대표 또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그가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다”며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며, 이 나라에 민주주의를 가져올 것이란 확신을 하고 있다”고 승리를 장담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과반 확보에 실패하며 종신 집권 야망에 일단 제동이 걸렸다. 20년 이상 집권했던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번에 연임에 성공할 경우 추가 5년 임기를 보장한 헌법에 따라 2033년까지 30년 장기 집권할 길이 열린다. 하지만 한때 85%에 육박했던 물가상승률에 리라화 가치 폭락 등 최악의 경제난, 지난 2월 대지진의 늑장 대응까지 겹치면서 지지층 일부가 등을 돌렸다.

이런 상황에서 재무부 관료, 교수 등을 지낸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비정통적 경제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에르도안의 반민주적 정치를 단절하고 정의, 부패척결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젊은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간 총선 또는 대선에서 우여곡절 없이 당선됐던 에르도안 대통령 입장에서는 최대 고비를 맞았다는 평가다.

다만, 에르도안 대통령이 대선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에 밀렸던 점을 고려하면 예상 밖 선전을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론조사기관 폴리트프로(Politpro)가 최근 30일간 시행한 설문 결과를 종합하면 클로츠다로을루 후보(48.9%)가 에르도안 대통령(43.2%)을 5%포인트 앞섰다.

이를 고려하면 대선 막판에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일부 표가 흘러간 것으로 해석된다. 변화를 원하는 청년층과 달리 50대 이상 중장년층에서는 여전히 안정을 원하고 있고, 에르도안 대통령이 선거 막판 저소득층을 겨냥한 선심성 공약을 쏟아냈던 점이 어느 정도 주효했다는 평가다. 정년 요건 폐지로 조기 연금 수령을 가능하게 하고 최저임금과 공공 근로자 보수를 대폭 인상하고, 한 달간 가정용 가스를 무상 공급하는 공약을 쏟아냈다.

아슬르 아이딘타쉬바쉬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에르도안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씨에 배를 안전한 항구로 인도할 수 있는 유일한 지도자라고 지속적으로 언급했고, 국민 상당수도 격동의 시기에 안정을 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양 후보가 득표율이 팽팽한 만큼 캐스팅 보트는 득표율 3위를 한 시난 오안(55) 승리당 대표가 쥘 전망이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5.2% 득표했다. 오안 대표는 “며칠 안에 지지 후보를 결정하겠다”며 “양측과 모두 협상에 나설 수 있다”고 말을 아꼈다. 뉴욕타임스는 “오안 지지자들은 우익 민족주의자들로 에르도안 후보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결선투표에서 에르도안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14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공화인민당(CHP) 본부에서 당원들이 초조하게 개표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AFP)
초조하게 결과 주시하는 서방…나토 향방 달려

이번 튀르키예 대선은 서방과 러시아 간의 대리전 성격도 있기 때문에 글로벌 각국은 초조하게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 튀르키예 대선이 ‘올해 가장 중요한 선거’로 꼽힐 정도로 전 세계 외교·지정학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우크라이나전에 따른 대러 제재 불참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내 갈등 유발 등 튀르키예의 친러 노선이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튀르키예는 현재 스웨덴의 나토 가입안 비준을 미루면서 다른 유럽국가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반면 클르츠다로울루 대표가 집권하면 친서방정책을 통해 유럽연합과 나토 관계 회복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우크라이나가 대반격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서 튀르키예가 나토 결집에 일조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튀르키예 대선 결과를 러시아와 서방국가들이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면서 “미국과 유럽 지도자들이 에르도안의 실각을 기뻐할 거란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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