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딘 신원 확인에 뿔난 유족들…합동분향소는 ‘눈물 바다’

[제주항공 참사]
33명 신원확인 ‘아직’…DNA검사 곧 나올 듯
유족 협의회 구성…“신원 확인까지 절차 중단”
‘가족이자 친구’ 시민 줄 이은 합동분향소
정치권·종교계 등 각계 각층 발길 이어져
  • 등록 2024-12-30 오후 6:09:23

    수정 2024-12-30 오후 6:52:07

[무안(전남)=이데일리 김형환 정윤지 기자] “사촌 형님이신데 형수님과 딸하고 같이…”

경기도 파주에서 전남 무안을 찾은 김유천(51)씨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사촌 형과 가족들이 탑승자 명단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 김씨는 합동분향소가 세워진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전남 무안으로 향했다. 김씨는 “너무 안타까운 사고다.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결국 돌아가셨더라”며 “좋은 곳에 가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일어난 지 이튿 날인 30일 오전 전남 무안국제공항 터미널에는 침통한 침묵만이 가득했다. 이따금 울리는 울음소리만이 그 정적을 깨고 있었다. 전날 이른 시간부터 무안국제공항에는 뜬눈으로 밤을 지샌 유족들은 희생자들의 신원 확인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일부 유족들은 “일처리가 왜 이렇게 느리냐”며 울분을 터트리기도 했다.

30일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공항 참사 피해자 유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딘 신원 확인에 뿔난 유족들…“가족 품으로 돌려줘야”

이날 당국에 따르면 오후 3시 30분 기준 희생자 179명 중 146명의 신원이 확인돼 33명의 신원 확인이 남은 상황이다. 하루가 넘는 시간 동안 신원 확인조차 되지 않자 유가족들은 울분을 터트렸다. 한 유가족은 당국 관계자를 향해 “한 순간에 함께 놀던 가족 3명을 잃었다”며 “당신들 가족이어도 일 처리를 이렇게 하겠느냐”고 항의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유가족들은 유가족협의회를 구성하고 모든 희생자의 신원 확인이 되지 않을 경우 장례 절차를 멈추겠다고 주장했다. 박한신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수습되지 않은 시신이 20여구다. 시신이 확인 되기 전까지 장례 절차 등 중단할 것”이라며 “인력을 충원해 형제, 가족들에게 80%라도 온전한 상태로 (시신을) 신속하게 보내주길 정부에 요구하고 바란다”고 강조했다.

당국은 유가족 달래기에 나섰다. 당국은 이날 오전 △검시 지휘 검사 6명 투입 △검시의 추가 지원 등을 설명하며 신원 확인에 속도를 내겠다고 유가족들을 달랬다. 나원호 전남경찰청 수사본부장 역시 브리핑을 통해 “시신 인도가 늦어지는 점은 정말 송구하다”며 “역량을 모아 최선을 다해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신원 확인이 늦어진 이유는 대형 비행기 참사의 특성 때문이다. 이번 참사의 경우 빠른 속도의 충돌과 함께 화재까지 발생하며 희생자들의 불가한 경우가 많았다.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유류품들마저 곳곳에 흩어지며 DNA검사가 유일한 방안이 됐다. 이날 늦은 오후 나머지 33명에 대한 DNA 검사가 나와 시신 인도 절차에 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크다.

협의회는 이날 오전 전남 무안종합스포츠파크에 설치된 분향소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합동분향소를 사고 현장인 무안국제공항 1층에 마련해달라는 것이다. 이들은 “유족 다수들은 멀리 갈 필요없이 공항 1층에 분향소를 만들어달라고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국토교통부 등에 말씀드렸다”며 “분향소는 멀리 있는 것보다는 사고가 이뤄진 장소에 있는 게 합당하다고 생각했고 여기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전남도는 유족의 요청을 받아들여 31일부터 공항 합동분향소를 운영하기로 했다.

30일 전남 무안군 무안종합스포츠파크에 마련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합동분향소에서 조문객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눈물의 분향소…각계각층 발길도

이날 전남 무안스포츠파크에 세워진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에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제단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긴 위패가 놓여 있었고 그 앞에 수북히 놓인 국화들에는 시민들의 깊은 애도가 담겨 있었다. 침통한 표정을 한 시민들은 한참 눈을 감은 채 희생자들의 명복을 간곡히 빌었다.

자신의 가족이나 지인이 희생자 명단에 있었던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전 직장동료가 희생자 명단에 있었다던 송기영(68)씨는 “지난 2월에 명예퇴직을 했다가 부부가 같이 변을 당했다.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해줄 수 있는 건 기도뿐이라 이렇게 찾아왔다”고 말했다.

희생자들과 일면식도 없지만 새벽 이른 시간부터 먼 지역에서 전남 무안을 찾은 이들도 있었다. 서울 강서구에서 오전 3시에 차를 몰고 이곳을 찾았다는 최윤호(24)씨는 “유튜브를 하고 있는데 한 구독자가 사고를 당했다는 댓글이 달려 진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곳을 찾았다”며 “오기 전까지 슬프긴 했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실제로 와서 위패들을 보니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의 슬픔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각계각층의 발길도 이어졌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고기동 행정안전부 장관 직무대행 등과 함께 이곳을 찾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우원식 국회의장,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도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인 진우 스님은 수십명의 스님들과 함께 이곳을 찾아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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