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투자의 역설…`세금 덜 내고 고용 덜한` 기업에 돈 몰린다

美증권사 스톤엑스 "ESG투자, 자동화·독점·불평등 부추겨"
ESG 최고등급 기업들, 실효세율 18.4%…최하기업들 27.5%
ESG 등급 좋은 테크기업, 稅테크 능하고 무형자산 많은 탓
종업원 수도 ESG 최고기업들 비해 최하기업이 3배 더 많아
생산 자동화로 파업·노사분규 적고 남녀 임금격차 줄어들...
  • 등록 2021-02-23 오후 1:28:59

    수정 2021-02-23 오후 1:30:04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기업들의 환경 보호와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개선을 주도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부각되고 있지만, 세부적으로 뜯어 보면 상대적으로 세금을 적게 내고 일자리를 적게 창출하는 기업에 ESG 투자금이 몰리는 역효과가 나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러셀1000지수에 속한 기업들의 ESG 등급과 실효법인세율, 자본수익률 (FT)


2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즈(FT)는 ESG 운동은 기후변화와 이사회 구성과 같은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세상을 개선하려는 명시적인 욕구에 의해 시작됐음에도 다른 분야에서는 오히려 사회 분열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뉴욕에 본사를 둔 증권 브로커리지업체인 스톤엑스의 빈센트 델루어드 글로벌 매크로 스트래티지스트를 인용, “ESG 펀드는 무의식적으로 자동화와 불평등, 독점적 집중과 관련된 사회적, 정치적 위기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장지수펀드(ETF) 데이터업체인 트랙인사이트에 따르면 글로벌시장에서 ESG 우수기업에 투자하는 ETF의 자산규모가 작년 말 1740억달러(원화 약 193조4700억원)를 기록했다. 이는 1년 전의 590억달러에 비해 3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ESG 등급이 높은 기업들이 등급이 낮은 기업들에 비해 훨씬 더 낮은 세율을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러셀1000 편입 기업들의 경우 ESG 최고 등급인 `AAA` 기업들이 작년 평균 18.4%의 실효법인세율을 부담한 반면 ESG 등급이 최하인 `CCC` 기업들은 27.5%에 이르는 높은 세율을 부담하고 있었다.

델루어드 스트래티지스트는 “이들 기업을 보면 ESG 등급과 실효법인세율 부담율이 거의 완벽하게 역비례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는 ESG 등급이 좋은 대부분 테크 기업들이 국가별 세율 차이를 이용해 법인세를 절감하고 있고 세제 혜택이 많은 무형자산을 다수 보유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일례로, 마이크로소프트(MS)는 인권정책과 생물다양성정책, 2030년까지의 탄소감축계획 등 대부분 ESG 지표에서 최고 등급을 받고 있지만, 최근 8년 간 실효법인세율은 16%만 부담했다. 반면 ESG 평가에서 `CCC`를 받아 최하위권인 유니버셜헬스서비스의 법인세율 부담율은 47%로, MS에 비해 3배 이상 높았다.

델루어드 스트래티지스트는 “빅테크 기업들의 이익은 너무 커서 세금 납부율이 조금만 올라가더라도 사회적책임 보고서에서 언급된 다른 항목보다 `사회(S)`분야에서의 점수를 더 크게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이 산출한 551개 기업의 ESG 지표 중에서 세금과 관련된 항목은 고작 5개로, ESG 평가에 있어서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아울러 고용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오고 있다. 델루어드 스트래티지스트는 “ESG 투자자들이 노동집약적인 기업을 기피하고 있는 탓에 사람들과의 의도치 않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 내 대형 15개의 ESG 주식형 ETF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ESG 최고등급 기업 15곳과 비중이 가장 낮은 ESG 최하등급 기업 15곳을 비교해 보면 애플과 MS, 펩시코 등이 포함된 ESG 우수기업들은 총 190만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는 반면 월마트와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 보잉 등이 속한 ESG 최하등급 기업들은 오히려 510만명에 이르는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다. 러셀3000지수만 놓고 봐도 ESG 우수 기업들은 평균적인 기업에 비해 20% 이상 종업원 수가 적은 상황이다.

델루어드 스트래티지스트는 “작년 ESG ETF가 무의식적으로 하는 일, 즉 직원이 많은 기업 주식을 팔고 로봇과 특허 및 지적재산권이 많은 기업을 매입하는 것이 최선의 투자전략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는 “은폐된 비밀”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ESG 펀드는 결국 인간보다 기계나 무형자산을 더 선호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또 “직원 없는 기업은 파업이나 노조와의 갈등이 적다는 특징이 있다”며 “또 로봇과 알고리즘에 의해 생산이 이뤄지면 남녀 직원 간 임금 격차도 크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델루어드 스트래티지스트는 “ESG 운동이 활성화하면서 조세 회피형 기술 독과점 업체나 종업원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제약 대기업과 금융회사 등에 더 많은 자금이 몰리게 만들고 있다”면서 “이렇다 보니 ESG가 현재 우리가 직면한 위기를 구할 수 있을 지 의문스럽다”고 꼬집었다. 이어 “고귀한 목표에도 불구하고 ESG 투자는 의도치 않게 산업화 이후 경제가 가진 가장 큰 병폐를 더 확산시키고 있다”며 “ESG 등급이 점점 더 자산의 배분을 결정짓고 있는 만큼 우리는 이들 자금이 어떤 기업들로 흘러 들어가는 지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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