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비겁한 변명` 대신 `아름다운 퇴장` 결단을

  • 등록 2019-01-14 오후 1:56:07

    수정 2019-01-14 오후 1:56:07

[이데일리 이성기 기자] “검찰이 수사를 한답니까?”

작년 6월1일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의 경기 성남시 자택 앞 놀이터. 사법행정권 남용(사법농단) 의혹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 발표 일주일 만인 그날 기자회견을 자청한 양 전 원장은 `검찰 수사를 받을 의향이 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이렇게 되물었다. `놀이터 기자회견`이라 불리는 그날, 양 전 원장은 “그때 가서 보지요”라며 각종 혐의를 일절 부인했다. 형식은 질문이었지만, `설마 사법부 수장을 지낸 자신을 향해 검찰이 칼끝을 겨눌 수 있겠느냐`는 오만함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1~4부) 전체를 동원한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 한 지 7개월여.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된 지난 11일 양 전 원장은 다시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이번엔 ‘친청’인 대법원 앞이었다. ‘진심으로 송구’ ‘제 부덕의 소치’ 등의 말을 입에 올렸지만 한낱 수사(修辭)에 불과했다. 검찰청 출석 전 약 5분 간의 회견 중 대부분의 시간은 사법농단의 책임을 회피하고 거리 두기에 할애했다.

“여러 법관들이 법률과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하고 이를 믿는다. 나중에라도 그 사람들에게 과오가 있다고 밝혀진다면 그 역시 제 책임이므로 안고 가겠다”, “모쪼록 편견이나 선입견 없는 공정한 시각에서 사건이 소명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는 사법농단의 실체가 있었다한들 자신은 몰랐으니 도의적 책임은 지겠지만 법적 책임은 없다는 단언이었다. 수 차례 강조한 편견·선입견·선입관 등은 결국 `검찰 수사가 잘못됐다`거나 사법농단 의혹을 여론재판 쯤으로 여기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여러 비판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대법원 앞 회견을 강행한 것도 구설에 올랐다. “전 인생을 법원에서 근무한 사람으로서 법원에 한 번 들렀다 가고 싶은 마음”이라고 둘러댔지만 자신의 영향력이 아직 건재하다는 걸 과시하고 향후 재판을 염두에 둔 사전 포석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재판 개입이나 특정 성향 법관 인사상 불이익 등은 없었다`는 거듭된 주장에도 불구하고 각종 문건이나 관련자 진술은 사법농단 의혹의 최정점으로 그를 가리키고 있다. 사법부 조직이 `검사동일체` 원칙 만큼의 상명하복 수준은 아니라 한들 제왕적 대법원장의 지시나 승인 없이 사법농단 사태가 벌어졌다고 보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1970년 서울대 법대를 나와 같은 해 사법시험(12회)에 합격, 40여년 법관 생활 줄곧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그로서는 작금의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터다. 전직 대법원장으로 헌정 사상 처음 검찰에 소환되는 수모에다 머지 않아 까마득한 후배 법관에게 재판을 받아야 할 처지로 전락해서다. 이번 사건이 사법부 발전이나 나라가 발전하는 전화위복이 되려면 지금이라도 실체 규명에 적극 협조하는 것이 옳다. 자신의 말대로 국민에게 헌신하는 마음과 사명관을 갖고 일하는 절대 다수의 후배 법관들이 원하는 것은 전직 수장으로서의 아름다운 퇴장이지 비겁한 변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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