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든 일할수 있다”…실리콘밸리 인재 채용 판도 변화

코로나發 재택·원격근무 일상화…脫실리콘밸리 가속화
인력채용 시장도 판도 변화…전국서 인재 유치 경쟁
대우 좋은 대기업과 경쟁에 중소 스타트업 울상
일부 인기 지역선 부동산·물가 상승 사회적 문제 야기
  • 등록 2021-07-28 오후 3:28:47

    수정 2021-07-28 오후 9:14:58

(사진=AFP)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미국 실리콘밸리 인재 채용 판도를 송두리째 뒤바꿔놨다. 언제 어디서든 가능한 재택근무 유연성 덕분에 꼭 실리콘밸리로 이주하지 않더라도 취업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인재 유치를 위한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경쟁은 이제 미 전역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현지시간) “수십년 동안 가장 인기 있는 분야인 정보기술(IT) 직업 중 일부를 얻기 위해선 실리콘밸리 인근에 살면서 엄청난 주거비용과 긴 통근 시간을 견뎌야 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실리콘밸리로 꼭 이주하지 않더라도 일을 할 수 있게 됐다”며 “팬데믹을 계기로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인재 채용 경쟁에 새 지평이 열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위터의 경우 팬데믹 이전인 2018년부터 실리콘밸리 인력을 다양한 지역의 사무소 등으로 재배치하는 등 유연한 근무 정책을 시작했는데, 올해 원격근무 신청자가 2019년 대비 9배 급증했다. 트위터는 현재 해안가에 위치한 도시 산호세에 새 사무실을 열 예정이다. 또 오스틴, 샌디에고, 포틀랜드 등지에서도 원격근무 직원들이 늘어나면서 사무실 임대를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더 다양한 지역에서 폭 넓은 인재를 채용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트위터의 제니퍼 크리스티 최고인적자원책임자(CHR)는 “(팬데믹을 계기로) 직원들의 인식이 영구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요즘은 근무 유연성이 정말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파일 공유 플랫폼 드롭박스 역시 여러 도시에 허브 사무소를 개설해 인력을 재배치했다. 올해 1월 이후 신규 채용자의 60%는 샌프란시스코, 뉴욕, 시애틀 이외 지역에서 일을 하고 있다. 업무용 메신저 업체 슬랙도 지난 4월 정규직 직원들을 대상으로 위워크 사무실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6개월짜리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일각에선 업계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빅테크 기업들이 스타트업이 채용할 수 있는 인재들을 먼저 데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드업들에게 있어서는 급여 인상 압박이 커지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150명을 직원으로 두고 있는 온라인 인테리어 디자인 스타트업 헤븐리는 그동안 실리콘밸리 대기업들에 미치지 못하는 급여에도 좋은 인재들을 채용할 수 있었다. 록키 산맥이라는 야외 활동이 가능한 좋은 환경이 있었던 덕분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이같은 이점이 사라지게 됐다. 이미 선도적인 IT 기업들이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정책을 채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나 마케팅 전문가가 강변 오두막에서 일하면서도 페이스북이나 세일즈포스에서 큰 돈을 벌 수 있게 됐다.

헤븐리 역시 언제 핵심 임원 또는 직원이 다른 회사로 옮겨갈지 몰라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 회사의 리 메이어 최고경영자(CEO)는 “한 때는 20% 급여 인상 및 더 나은 대우 등을 제시한 다른 기업들에게 여러 임원들을 빼앗길 뻔 했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실리콘밸리 근무자들에게 인기 있는 일부 도시에선 부동산 가격 및 물가 상승 등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부동산 중개업체 애틀래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텍사스 오스틴에서 도시 내 거주자가 이사한 사례보다 작년까지 샌프란시스코에 살았던 주택 구매자가 더 많았다. 구글 직원 약 50명이 텍사스에 집을 산 것으로 집계됐다. 페이스북도 23명, 애플과 아마존 직원도 각각 17명이 주거지를 옮겼다. 원격 근무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로부터 이주자들이 많은 보즈먼의 경우 지난달 주택 가격이 전년 동기대비 50%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보즈먼에 본사를 둔 한 기업의 CEO는 직원들의 생활비 부담이 커진 반면 직원 채용은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기업들과 경쟁하게 되는 등 더욱 어려워졌다고 호소했다.

다만 중소 스타트업의 인재 채용 어려움은 일시적일 것이라는 진단이다. WSJ은 “기술직 민주화가 단기적으로는 실리콘밸리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게 아니라 더욱 확대하고 있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소규모 허브 기업들이 새로운 이직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인재 채용의 폭을 넓혀줄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일부 대규모 IT기업들이 재택근무 정책을 철회하기 시작하면 일시적인 벤처캐피탈의 노동력 부족 현상도 완화할 것이라고 신문은 전망했다.

한편 최근 미국에서는 “재택근무를 포기하느니 차라리 이직하겠다”는 근로자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블룸버그통신이 모닝컨설턴트에 의뢰해 보도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40% 가량이 원격·재택 근무를 선택하지 못할 경우 사직을 고려중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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