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정부가 기업투자 촉진책의 일환으로 기업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방침을 정한 가운데 실제 이 정책이 집행될 경우 대기업의 국내 법인에 있던 자금이 해외현지법인 쪽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기업들로선 사내 유보에 따른 페널티를 받기 보다는 해외 법인으로 자금을 이전하는 게 유리하다는 점에서 자칫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감이 높다는 얘기다.
| <자료: 한국은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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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한국은행과 기업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기업이 해외현지법인을 통해 벌어들인 이익 중 배당 후 남은 사내유보액은 86억1400만달러, 원화로 8조8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한은이 1980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액수다.
해외법인 사내유보금은 2000년대 중반 이후 해외진출기업들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홍경희 한은 국제수지팀 차장은 “해외직접투자가 늘어나는 추세라 해당 기업의 영업결과 수익이 발생하면 배당도 늘어나고 유보금도 함께 늘어난다”고 말했다. 다만 “파이 자체가 커진 것인지, 동일한 수익이라도 배당을 적게 해서 유보금이 늘어난 것인지는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내유보액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3600만달러까지 축소된 후 상승세로 돌아서 2011년 88억100만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후 3년 연속 80억달러를 계속 넘고 있다. 해외현지법인의 사내유보액은 국제수지상에선 해외현지법인의 추가 투자여력으로 보고 ‘재투자수익 수입액’으로 계상된다.
하지만 해외현지법인이 벌어들이고 남은 이익을 국내로 갖고 온 경우는 거의 없어 보인다. 국내기업들이 해외현지법인에 쌓아둔 사내유보금을 국내로 들여올 경우엔 국제수지 금융계정 내 직접투자가 감소하게 된다. 하지만 오히려 해외직접투자는 빠르게 늘고 있는 중이다. 실제로 해외직접투자 잔액은 2010년 기준으로 외국인직접투자를 앞질렀다. 지난해는 2287억달러로 2007년(748억달러)의 3배에 달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 투자해서 (번 이익을) 국내에서 다시 쓰면 좋겠지만, 기업들 입장에선 해외투자를 계속 늘려야 하는 문제가 있다”며 “대부분 그러한 목적으로 해외에 유보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부가 국내 기업들의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매기겠다고 한 만큼 풍선효과로 해외로 자금이 이전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10대 그룹 81개 상장사(금융사 제외)의 사내유보금은 지난해말 515조6000억원, 올 1분기엔 515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500조원이 넘는 사내유보금이 국내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윤석헌 숭실대 교수는 “정부가 투자를 늘리기 위해 유보금에 세금을 매기겠다고 하니 유보금이 줄어들긴 하겠지만, 정부가 원하는대로 투자활성화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라며 “자금이 해외로 나갈 수 있는 인센티브가 높아지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용어해설재투자수익수지= 국내기업 해외현지법인의 사내유보액(재투자수익 수입액)과 외국 기업 국내현지법인의 사내유보액(재투자수익 지급액)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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